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은퇴. 은퇴를 맞이한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또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대부분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준비 없이 은퇴를 맞이한다. 우리 윗세대에서는 은퇴 이후 아무 일 없이 지내도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또 사회적으로도 별 무리 없이 지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 구조와 가정 구조의 변화로 인해 은퇴 후의 삶에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난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대부분 50대 중반에 은퇴를 하고, 그 이후 최소한 30년 이상 살아가야 한다. 그 긴 기간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다시 뭔가를 시작할 엄두를 쉽게 내지도 못하고,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재취업을 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다. 친구들을 만나 등산하고, 막걸리 한 잔하고, 여행하며 보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나 가능한 일이다. 매일 긴 기간을 그렇게 무료하게 지내며 보낼 수는 없다. 자식들은 모두 사회생활을 하느라 바빠서 은퇴한 부모와 함께 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은퇴한 사람들 중 일부는 사회적으로 또 가정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고 심지어는 회사와 가족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은퇴 후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든지를 제임스 홀링스는 그의 저서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옛날의 자기감 (sense of self)은 흐려지고, 새 자기감은 아직 발가벗은 채로 있다. 그런 위기의 순간들은 대체로 대단히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위기는 자아에게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라고 권하는 초대장이 들어있다. 그러나 자아는 아마 이 초대에 끝까지 버틸 것이다.”
이런 힘든 상황들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하게 된다. 왜 태어났는가?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 좋게 재취업을 한다고 해도 몇 년 후에는 다시 은퇴자의 삶으로 돌아온다. 실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은퇴 이후의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 될 수 있다.
실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이 배우고 성숙하게 될 것이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자신의 틀을 깨는 고통을 통해서 타인과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요즘 연습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나의 판단 기준'을 없애는 작업이다. 그 판단 기준은 나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그간 살아오면서 나를 지켜주었던 하나의 성(城)이다. 그 성은 고마운 것이지만, 이제는 그 성을 버려야 한다. 내가 '나'라는 자신의 틀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은퇴 이후에도 그 틀을 유지하고 강화하면 할수록 삶의 고통이 뒤따르게 되어있다. 여유롭고 행복한 노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자신을 활짝 열고 다가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하고 지혜롭고 풍요로운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건강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바로 ‘사랑’과 ‘일’이다. 자신의 틀을 버리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올라온다. 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타인과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저절로 올라오게 되어있다. 수행자가 수행을 열심히 하면 지혜와 자비가 저절로 열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산속에서 고행을 한 후에 세상으로 나와서 중생들을 제도하게끔 되어 있다. 어떤 수행자라도 자비와 사랑이 부족한 수행자라면 올바른 수행자라 할 수 없다. 또한 사랑의 대상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정, 무정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이다.
왕이 한 가지 특별하고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하라고 그대를 어느 나라로 보냈다. 그래서 그대는 그 나라로 가서 다른 임무를 백 가지나 수행했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그 나라로 간 이유였던 그 임무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아무것도 수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듯 사람은 한 가지 특별한 임무를 위해 이 세상에 왔으며,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목표이다. 만약 그 사람이 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 Rumi)
16세기에 살았던 시인의 말씀이 은퇴한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바로 임무를 찾는 것이다. 그 임무를 찾게 되면 할 일은 저절로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소명이며, 영혼이 목소리이며,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다. 그 일이 바로 그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모든 존재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 존재의 이유가 바로 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의 임무는 무엇인가?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고, 지금도 계속해서 자문하고 있다. 아직도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고 있다. 마치 깜깜한 밤을 지나 어슴푸레한 밝음이 서서히 드러나는 느낌이다. 명상, 걷기, 상담을 활용하여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힘든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임무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또한 글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삶이 나의 임무이고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