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인 87세의 ‘얼’은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가족들에게 무심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돈도 떨어지고 할 일도 없어지게 된 ‘얼’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우연한 기회에 마약을 배달하며 돈을 벌게 되면서 가족을 포함하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 주며 살아간다. 나이도 많고 원래 자유분방한 ‘얼’은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이 마음 내키는 도로를 주행하며 배달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길로 다니는 ‘얼’을 잡기 위해 마약 수사관들은 애를 먹기도 한다.
부인의 임종이 다가왔다는 손녀의 소식을 듣고 배달 도중 병원으로 달려가 부인의 임종을 지켜본다. 부인은 남편의 잘못을 용서하며 ‘어제 보다 오늘 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다. 장례식을 마친 후에 딸과 손녀는 ‘얼’을 받아들이며 추수감사절에 집으로 초대를 한다. ‘얼’은 배달 도중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되고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서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얼’은 ‘시간은 살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후회와 함께 주어진 삶을 수용한다. 그는 교도소에서 화초를 키우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담담하게 살아간다.
평생 남편을 원망했던 부인이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노부부의 장면을 보며 저절로 눈물이 났다. 나도 언젠가는 아내와 이별을 맞이할 것이다.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겠지만, 가는 순간까지 옆에서 같이 서로 의지하며 지낼 것이다. 가끔 아내에게 화를 내거나 불편한 말을 하고 나면, 죽음을 맞이할 시점에 그 언행이 나를 괴롭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위해서, 또 아내를 위해서 그런 말과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죽음의 순간에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고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부부는 평생 함께 살면서 사랑하고 다투기도 하며 살아간다. 자기 자신의 모습 자체도 가끔은 싫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배우자의 모습이 늘 예쁘게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살아온 세월, 함께 겪어 낸 힘든 시간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안쓰러워 연민의 마음만 올라올 뿐이다.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 한마디를 건네며 하루하루 오손도손 살아가길 바란다. 지금도 아내를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외에 다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요즘 코로나로 집안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가족 간 불화가 많아졌다고 한다.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계기로 가족들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한 시도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얼'이 말한 ‘시간은 살 수 없다’라는 말이 며칠 째 가슴속에 남아있다. 나이 들어가면서 시간의 중요성을 점점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짧아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간 너무 많은 시간들을 낭비했던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기에 이 말이 가슴에 남아있다. 별로 할 일도 없는 요즘이지만 시간의 소중함은 점점 더 많이 느낀다.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주는 ‘시간’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을 낭비하는 패턴은 쉽게 바뀌지는 않지만, 다행스럽게 조금씩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고 있다.
‘시간은 살 수 없다’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돈을 벌고, 꿈을 이루기 위해, 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만큼 삶에 가치가 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모임에 나가는 것이 좋을까?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까?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이 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까? 지금 이런 행동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이런 고민을 한번쯤 한 후에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가끔은 오직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 내면의 충만함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사람과의 소통이 삶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함께 그리고 따로’ 지내는 방법을 통해 삶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길을 걸을 때에도 함께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홀로 걷는 한가로움과 여유로움도 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잘 쓴다는 말이 단순히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하루 종일 빽빽한 일정을 만들고 그 일정에 맞춰 살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행동이 얼마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 자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돈은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원하는 물건을 살 수는 있지만, 시간만은 살 수 없다. 다만 시간을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데 사용할 수는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찾아 낸 시간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약 이 생각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는 잘 살았다는 의미고, 동시에 시간을 잘 샀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