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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의 의미

by 걷고

물건을 담기 위해서 그릇이 필요하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양과 무게가 있다. 또한 그릇이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온전해야 한다. 많이 담기 위해서는 그릇이 크고 튼튼해야 한다. 말, 행동, 글은 그 사람의 크기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언행과 글은 자기 문제에 국한되어 있다. 큰 사람은 자신보다는 사회, 나라, 인류, 세계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대부분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지도 못한 글들이 수두룩하다. 힘든 과거에 묶여 있거나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내용의 글도 많이 있다. 최근에는 자그마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에서 조금씩 벗어나서 타인이나 사회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 성찰, 반성, 수양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바로 숙성시키는 작업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이고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상황이 닥치면 빨리 벗어나려 하거나, 잊어버리려 하거나, 누군가에게 짐을 대신 떠넘기고 싶어 한다. 주어진 상황을 피하거나 잊기 위해 부정적인 습관에 빠지는 행위는 아주 어리석은 일이고, 그 결과는 지금의 자신보다도 더욱 작아지는 자신을 만들게 된다. 상황을 담고 있어야만 숙성시킬 수 있다.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만 숙성시킬 수 있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버티며 근육을 키워나가듯이, 삶의 고통을 견뎌내야만 내성이 생기고 견뎌낼 힘이 생기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명상과 걷기가 내게는 아주 좋은 숙성의 과정이다. 힘든 상황이나 스트레스가 발생 시 빨리 털어버리려는 생각 대신에, 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명상과 걷기를 한다. 명상과 걷기가 문제와 자신을 분리시켜주면서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런 공간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면 견뎌낼 힘이 더 생기고, 따라서 힘든 상황이 주는 부담이 저절로 줄어들게 된다. 내면의 힘이 생기면서 견뎌낼 힘이 커진 것이다. 같은 상황인데, 스트레스가 주는 부담과 무게는 줄어든 것이다. 숙성이 더욱 잘 되고 깊어지면, 부담과 무게는 점점 더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숙성을 통해서 고통의 자리에 기쁨이 들어서게 된다.


이런 기쁨은 자신의 그릇을 넘쳐흐른다. 바로 나누는 과정이다. 사람마다 나누는 방법이 다르다. 사람마다 지닌 능력과 재능과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을 잘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게 글쓰기는 나누는 과정이고 방법이다. 비록 아직 여물지 않은 글쓰기 솜씨지만, 꾸준히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서 나누고 싶다. 나누기 위해서 SNS 활동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내 글을 읽고 나서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욕심은 없다.


담는 작업은 삶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명상, 걷기, 독서, 성찰 등을 통해서 숙성시킨다. 숙성시킨 내용을 글로 나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 그릇을 키워야 한다. 그릇이 커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내용이 풍부해진다.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숙성시키는 작업을 잘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실은 하나이다. 평생 담고 숙성시켜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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