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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명상

by 걷고

금요일은 아무런 일정도 없는 날이다. 늘 하듯 오전에 명상과 글쓰기를 한 후, 점심을 먹고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날씨가 푸근해서 오랜만에 천천히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날씨와 걷는 속도가 관계가 있다. 차가운 바람이 가끔 불기는 하지만 기분 좋게 땀을 식혀준다. 한강변의 얼음은 많이 녹아있었고, 마치 장마 후 쌓인 쓰레기 더미처럼 얼음 무더기가 강변에 몰려있다. 얼음이 녹으며 강변 쪽으로 밀려와서 얼음 무더기가 된 것이다. 노을공원 가는 길로 계단길을 택했다. 노을 나들목에서 노을공원으로 오르는 558개 계단은 하체 운동에 좋은 곳이다. 천천히 올라가니 그다지 힘들지 않다.

노을 공원에 올라서자 평일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천천히 편안하고 여유롭게 걸었다. 굳이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냥 편안한 발걸음만 있다. 간혹 새가 재잘거리면 잠시 멈춰서 새소리를 듣기도 한다. 새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새소리는 맑게 들린다. 혼자 넓은 공원을 걸으니 마치 내가 홀로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세상과 단절한 채 홀로 살고 있는 느낌이지만 전혀 외롭거나 두려움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냥 혼자 이 세상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인적이 드문 코스를 택해서 걸었다. 가끔은 이런 고독을 느끼며 홀로 걷는 것도 좋다. 사람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홀로 걷는 충만감도 있다.

몇 년 전 ‘화병 세미나’에 참석해서 패널들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한방 신경정신과 과장, 요가 전문가, 명상 전문가 세 사람이 나와서 각자의 경험과 연구를 발표했다. ‘화가 날 때 어떻게 풉니까?’라고 질문했다. 세 사람 모두 마치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 ‘발에 의식을 집중하고 걷는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걷기 명상이다. 명상은 자각과 집중의 두 날개를 갖고 있다. 자각은 자신의 몸, 생각, 말, 감정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집중은 명상의 대상으로 돌아가서 집중하는 것이다. 자각이 우선 되어야 집중할 수 있지만, 자각하기 위해서 집중해야만 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많은 명상법이 있지만, 이 두 가지 원칙에서 벗어난 명상은 없을 것 같다.


화가 났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명상의 대상인 발의 감각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 전문가들은 화를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 막대기를 땅에 박아놓은 상태에서 원숭이를 줄로 묶어 놓았다고 상상해보자. 원숭이는 답답해서 난리 치며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지만 줄에 매여 있어서 이내 포기하고 온순해진다. 자각은 난리 치는 원숭이가 줄이 당겨지는 힘을 느끼는 것이며, 집중의 대상은 막대기가 된다. 자각 후 감정과 생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모든 판단을 내려놓으며 집중의 대상으로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요동을 칠 때 그 요동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자각이고, 그때 그 요동치는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명상의 대상인 발의 감각으로 돌아와서 집중하는 것이다.

“명상은 떠오르는 것은 그것이 생각이든, 감정이든, 기억이든 인지하되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둔다. 떠오르는 것들에 주의를 집중하되 자애로운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매달리지도 물리치지도 않으며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지나가도록 지켜본다.”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2018)


감정이나 생각, 기억들과 연결된 것들을 소환하거나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비판단적으로 단지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기만 하면 강도가 약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감정이나 생각을 곱씹다 보면 강도가 더욱 강해져서 통제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자각의 힘이 중요하다. 빨리 알아차릴수록 집중의 대상으로 빨리 돌아올 수 있고,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감정이 과거의 감정까지 모두 소환해서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발의 감각에 집중하며 걷는 것이 걷기 명상이다. 걸으며 발목 아래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어떤 생각, 감정, 기억 등이 떠오르면 자각한 후 부드럽게 다시 발의 감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걸으며 많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신발과 지면의 감촉, 양말과 신발의 감촉, 발과 양말의 감촉, 발등과 신발의 접촉 감각, 발에 느껴지는 한기나 온기, 발목의 느낌, 흙 길이나 바위, 또는 눈 위를 걸을 때 느껴지는 발 감각의 변화 등. 어떤 것을 느끼려 애쓰는 것이 아니고, 느껴지는 것을 그냥 느끼는 것이다. 가끔은 새소리나 빗소리 또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머물 수도 있다. 잠깐 멈춰서 아름다운 소리와 풍경과 하나가 되는 것도 좋다. 풍경을 보는 자신과 풍경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걸으며 발의 감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각과 집중을 하며 꾸준히 걸으면 많은 감각을 느낄 수 있고, 그 감각을 점점 더 정교하고 진하게 느낄 수 도 있다. 다만 일부러 정교하거나 깊게 느끼기 위해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느껴지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생각이나 감각은 동시에 느낄 수 없고, 찰나의 순간에 오직 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거나 한 가지 감각만을 느낄 수 있다. 명상이 중요한 이유는 생각을 감각으로 변환시켜서 생각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자각을 통해 감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순간 생각은 저절로 끊기게 된다. 생각을 끊기 위해서 일부러 애를 쓰면 쓸수록 생각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감각으로 돌아오면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마음속 여유 공간이 생기며 서서히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잃어버렸던 삶의 활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생각, 감정, 과거의 기억 속에 빠져서 내린 현재의 결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미 그 판단은 오염된 마음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걷기 명상은 아주 쉬운 방법이지만 실행하기는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발의 감각에 집중이 잘 되지 않으니, ‘나는 명상에 자질이 없나 봐, 너무 어려워,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생각 속에서 살아온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명상은 평생 하는 것이다. 되든 안 되든. 우리가 밥 먹고 자는 것을 평생 하듯이. 어느 날은 밥맛도 없고 불면증으로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식음을 전폐하거나 잠을 아예 안 자고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냥 걸을 때마다 하면 된다. 잘 되든, 잘 안 되든. 적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걷기 명상을 하는 순간만이라도 우리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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