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3막 (득력과 인생 각본)

득력과 인생 각본

by 걷고


우리는 매일매일 각자의 인생 각본을 쓰고 있다. 지금 각자의 모습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이기에 억울해하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지금의 모습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스스로 몸, 마음, 생각으로 자신이 직접 써 내려간 인생 각본의 결정체이다. 그것은 부모를 포함해서 어느 누군가에 의해 쓰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자신만의 인생 각본이다.


지금까지의 각본을 자신이 만들어왔기에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가 있다. 과거의 점과 지금의 점, 그 두 개의 점을 이으면 그 연결선 상에서 미래의 점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니 숙명이니 라고 얘기를 하며 자신의 신세타령을 하기도 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마치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다는 듯 주변인을 탓하며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숙명을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하였고, 운명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하여져 있는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 라 하였다. 두 가지 모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수동적으로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은 불필요하거나 노력을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으니 굳이 애쓸 필요 없이 주어진 삶에 안주하며 살라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인생 각본을 인과법으로 명쾌하게 설명을 한다. 즉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착한 일을 하면 착한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하면 악한 결과가 온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삶이 불행하거나 불만족스럽다면 스스로가 불행하고 불만족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에도 정확하게 적용이 된다. 사람들은 작은 투자를 하고 큰 결과를 얻으려 하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원망하기 일쑤이다. 과연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했는지 살펴보면 스스로도 자신이 노력에 비해 많은 결과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변화되어야만 한다. 이를 현인들은, ‘익은 것 설게 하고, 설익은 것을 익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방식에서 벗어나고, 덜 익숙한 방식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우리 집 작은 방은 명상실로 꾸며서 작은 불단과 좌복, 죽비, 알람시계, 향, 초 등이 갖춰져 있다. 거실과 부엌은 조금 산만하게 여러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지만, 명상실만은 늘 들어갈 때마다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정갈하게 유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 문지방 높이는 히말라야 산 보다 높고, 문지방을 넘는 것은 38선처럼 바로 보이기는 하나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다. 소파에 누워 TV 보기를 좋아하고 집사람과 재잘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술 한 잔 마시고 팔자 좋게 누워 있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명상실로 들어가는 것은 아주 심한 고행이고, 들어가는 연습 자체가 수행이며, 들어갈까 말까 하는 망설임은 내 안의 악마와 사투를 벌이는 치열한 구도의 과정이다. 대부분 악마가 이겼고, 나는 그 악마의 욕구대로 TV를 보며 울고 웃으며, 평상시 모습대로 익은 것을 더욱 익게 만들고 있다. 문지방 너머가 천상이고 문지방 밖은 지옥이나, 그 지옥이 내게는 천상으로 보이고, 천상이 지옥처럼 느껴진다. 주객이 전도되고 앞뒤가 바뀐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 마음, 몸가짐 등이 자신에게 좋은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익숙한 방식대로 자신에게 백해무익한 일을 좋아하고 반복하며 살고 있다. 그 결과 생각은 왜곡되고 마음은 불행하고 몸은 망가진다. 득력(得力)을 말할 때, 사람들은 어떤 큰 힘을 얻는 것을 득력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득력은 오히려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자유자재하게 하는 것이 득력이다. 득력의 과정은 익숙했던 것을 모두 비워내는 것이고, 덜 익은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하는 행동, 마음가짐, 생각, 언어, 정서 등은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내 안의 악마 또는 도둑놈이 나의 집안에 들어앉아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도둑놈이 주인인 줄 알고 모시고 따른다. 그럴수록 점점 더 자신의 주인과는 멀어지고, 어느 순간 주인은 완전히 사라지고 도둑놈이 정말 주인이 되어 버린다. 익숙했던 모든 것을 비움으로써만 도둑놈은 사라지게 되고, 도둑놈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주인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득력은 결국 내 안의 도둑놈을 쫓아내고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그리하면 세상일에 굳이 번거롭게 힘쓸 일이 없다. 힘쓸 일 없는 것이 참다운 득력이다. 서산대사 휴정스님의 저술인 선가귀감이라는 책에 득력을 잘 표현한 문구가 있다.


‘ 내가 한 마디 할까 한다. 생각 끊고 반연 쉬고 일없이 우뚝 앉아 있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


우리 모두 득력을 하여 각자 자신의 주인이 되고, 자신의 인생 각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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