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삶
날짜와 거리: 20210718 – 20210722 27km
코스: 봉산 외
평균 속도: 3.3l,
누적거리: 4,46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날씨가 무척 덥다. 오후나 저녁 시간에 걷는 것보다 아침 일찍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침 식사 후 집 뒷산이 봉산을 걸었다. 걷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앞에서 사람이 걸어오면 마스크를 쓰고 벗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귀찮아 옆으로 돌아선다. 비가 온 후여서 그런지 숲이 더욱 울창하고 활기차게 보인다. 숲에는 아직 습기가 남아있어서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맡을 수 있다. 마치 하늘에 천공이 뚫린 듯 나무 그늘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산길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봉수대까지 가는 길은 내내 이런 그늘이 져서 굳이 모자를 쓸 필요조차 없다. 집에서 출발해서 돌아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 걸은 거리는 약 9km 정도다. 아침 산책으로 충분하다.
이제 백수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는지, 평일 오전에 홀로 산책하는 행동이 편안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이런 생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그런 죄책감이 서서히 사라졌다. 상담사로 활동하기 위해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서서히 몸에 익기 시작하면서 더욱 편해지기 시작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노력, 시간, 경제적 투자가 조금 아까운 면도 없지는 않지만, 대신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진 보상을 받았기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상담사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여유로움도 갖게 되었다.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30분 정도 낮잠을 잔다. 30분 이상 낮잠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방송을 본 후에 가능하면 30분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의사가 하는 말이니 믿는다. 낮잠을 잔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증산 정보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찾는다. 도서관 자리가 만석이라 들어갈 수 없다. 디지털 자료실도 만석이고 일반 열람실도 빈자리가 없다. 좋은 일이다. 더운 집안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보다 시원한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집에서 책을 읽고 있다. 요즘은 증권 관련 서적을 주로 보고 있다. 경제 상식이 없어서 책을 읽는 내내 네이버 검색창에 경제 용어를 검색하며 책을 읽고 있다. 그럼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주마간산 식으로 책을 읽고 있다. 언젠가는 이해될 날이 올 수 있고, 아니어도 괜찮다. 이해되는 부분까지만 이해하면 된다.
구체적인 목적을 갖지 않고 독서를 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모든 언행에는 목적과 방향과 의도가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가장 노릇을 하기 위해 일을 했고, 인생 2막을 위해 상담 공부를 했다. 불편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불교 공부를 했다. 마음공부 관련 서적을 보거나 수행 단체에 가서 집중 수행을 하기도 했다. 모든 언행과 노력은 불편함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서였다. 물론 삶의 과정에 필요했던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본질에 충실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본질은 모든 목적과 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나타날 수 있다. 바로 자신을 찾고 밝히는 일이다.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게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삶이라면, 지금부터의 삶은 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을 찾고,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책을 보거나 걷거나 명상하거나 글을 쓰는 이런 행위들이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마치 강태공이 낚시 바늘이 없는 낚싯대를 강가에 띄워 놓듯이 어떠한 목적이 없는 행동을 하며 그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 본질에 충실한 삶이다.
아침에 일어나 50분 정도 명상을 한다.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한 후에 서서히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 좌복 위에 앉아 호흡에 집중하면 여러 잡념들이 떠오른다. 물결이 일지 않는 수영장에 쓰레기들이 떠오르듯 잡념들이 떠오른다.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감각에 집중한다. 손의 감각이 제일 먼저 느껴진다. 마치 손이 부풀어지는 느낌이 들거나 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얼굴과 다리에 가려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창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어 상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감각에도 집착하지 않고, 다른 감각이 느껴지면 그 감각에 집중한다. 감각을 잡으려 하지도 않고 일부러 떠나보내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느껴지는 것을 느낀다. 잡념이 떠올라도 그냥 내버려 둔다. 저절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른 잡념이 올라온다. 잡념의 생멸이 매 순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스즈키 순류 선사의 책 ‘선심초심’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사는 잡념이 올라오는 것이 명상이고,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다. 다만 그 잡념에 끌려 다니거나 빨리 없애려는 무의미한 노력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 역시 목적 없는 행동이다. 앉아서 호흡에 집중할 때는 모든 것을 잊고 호흡과 하나가 되면 된다. 감각에 집중할 때에는 오직 감각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아무런 목적이나 의도 없이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일에 몰입하며 하나가 되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그 방식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지금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취해야만 한다. 물론 지금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의 삶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하면서 행복을 취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행복을 위해선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느냐, 아니면 지금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살아가느냐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어느 것이 좋다고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육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겨우 실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하는 일 자체에 집중하는 것, 일과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데 너무 많은 세월이 걸렸다. 이것도 겨우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지, 아직 체득이 된 것은 아니다. 그나마 변화라면 목적 없는 행동이 조금씩 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생산적이고 목적도 없고 창조적이지도 못한 삶으로 인한 죄책감이나 불안감, 부담감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 점점 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더 편안해질 것이다.
걷기, 글쓰기, 명상, 독서가 지금 나의 삶이다.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별 다른 일이 없고 하루를 보내기가 너무 무료해서 시작한 일들이다. 지금은 이 일들이 나를 이끌어 가고 있고, 나의 삶이 되어가고 있다. 가끔은 이들이 내게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혼자만의 삶이 아닌 나누는 삶을 살아가라고 속삭이고 있다. 일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절로 할 일들이 나타나고 언젠가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