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다 07]

행복한 책 읽기 4회기 (가장 멋진 삶)

by 걷고

두봉 주교님께서 사순절 강의 내용을 모아 정리한 책 ‘가장 멋진 삶’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다. 주교님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셨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또 두봉 주교님에 대한 일화를 들으며 주교님이야말로 ‘가장 멋진 삶’을 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두봉 주교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몰랐던 나는 모임을 통해서 한두 가지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주교의 정년은 75세까지인데, 60세가 되신 해에 은퇴하시고 다른 분에게 자리를 물려주신 후 당신이 머무셨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천막을 짓고 참 종교인으로 지내고 계셨다. 주교님께서 75세 되던 원래 계셨던 곳에서 모시고 오시며 머무실 곳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동네 아주머님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어울리며 묵언의 전법과 일상 속 수행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갑자기 주교님이 뵙고 싶어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셨다고 해서 검색해 보니 주교님 영상이 많이 있다. 시간 날 때 영상을 보며 주교님을 뵙겠다는 발심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음을 심어놓으면 언젠가는 싹이 돋아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단에 밑줄 그어 놓은 것을 마음 열고 쭉 다시 읽어보며 질문의 답을 찾았다. 모두 좋은 말씀이고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지만, 질문을 받았던 순간에 가장 마음이 가는 문구를 찾았다. 바로 ‘사랑’에 관한 문구다.

“예수님의 사랑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 수많은 부모들이, 수많은 연인들이, 부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사랑의 이름으로 매를 드는 부모도 있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강요하는 부모도 있다. 자신의 체면과 가문을 위한 도구로 자식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부모의 또는 가정의 꿈을 위해 살아가기도 한다. 주인의 삶이 아닌 종의 삶이다. 다행스럽게 성인이 되어 굴레에서 벗어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족쇄가 평생 자신을 옥죄고 있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고 폭력이고 인권 유린이며 자식들의 삶을 빼앗는 짓이다. 고등학교 동창 중 수재인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에 매달리며 살았다. 부친이 법조계에 계신 분이기에 자신의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았다. 번번이 실패하자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결국 그 친구는 대학생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요즘은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부모로부터 벗어나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두 번째는 상대방에 맞춰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어쩌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처방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음식, 습관 등을 관리하며 건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원한다고 가져다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많은 문제를 발생하게 한다. 자식들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자 역할이다. 가끔 식당에서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고, 마치 자신의 집인 양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그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고 천방지축인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랑은 위의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어떤 사랑이 참 사랑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어서 기쁘다. ‘상대방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가 바로 내가 찾던 답이었다.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주는 것’, 이 두 가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행동과 말, 태도,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죽비소리 같이 차갑고 정신 바짝 들게 해 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옆에서 같이 도우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때로는 스스로 극복하게끔 멀리서 지켜만 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언행과 태도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세심하게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만 한다. 남을 돕는다는 명목 하에 자기 꾀에 빠져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다. 다만 주는 사랑은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무조건 주는 것이다. 참다운 보시(布施)는 세 가지가 없어야 한다고 들었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주고받은 물건이나 대상이 없어야 한다. 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받은 사람은 갚아야만 한다는 빚을 안게 된다. 주고받은 물건과 대상은 돌려주어야 할 것들로 남아있게 된다. 이 세 가지가 없는 사랑과 보시가 참다운 사랑이고 보시이다. 참다운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일체의 언행과 태도, 그리고 어떤 조건이나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나눔이다. 이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참다운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야만 하고, 사랑과 동정을 구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마음 이면에는 따뜻한 자비심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렵기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성장시켜주는 좋은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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