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별로 없다. 하루하루는 천천히 가는 것 같은데, 일 년은 금방 지나간다. 막 새해를 맞이했던 것 같은데 벌써 10월 중순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수행에 집중할 때이다. 어영부영 지내며 세월을 낭비할 수는 없다. 수행도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에 해야 한다. 30대에 1년 공부한 힘이 60대에 10년 공부한 힘과 같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힘이 있을 때 공부를 해야 마음공부의 힘을 얻을 수 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이미 늦은 것일지는 몰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간 나름대로 꾸준히 수행을 해 오고 있었으니 그간의 공부가 도움이 되어 앞으로 공부의 힘이 될 수 있다. 이번 동안거부터 시작해서 매년 두 번의 안거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나갈 생각이다. 두 번의 안거인 하안거와 동안거는 각각 3개월로 총 6개월간 진행된다. 비록 공부가 잘 되지는 않더라고 그 6개월의 기간 동안 불필요한 삼업을 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 만나는 일이 줄어들고 술도 마시지 않으니 그만큼 삼업을 지을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마음공부에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상황과 경계를 만나 삼업을 짓고, 그 삼업으로 인해 다시 괴로워하는 무한 반복되는 어리석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 줄어들 수도 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불교와 인연이 꽤 깊은 사람인 것 같다. 큰 스승님들과의 인연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마음공부를 하려고 하면 주변에 공부를 도우려는 상황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안거 시작 전에 마음 준비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다 우연히 고우 큰스님의 법문을 정리해 놓은 책,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 고우 스님 법문’을 만났다. 책도 시절 인연이 있다. 고우 스님께서는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중도 연기, 무아, 공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며 자세하게 설명해 놓으셨다. 무엇보다 화두를 드는 방법에 대해 매우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꽤 오랜 기간 화두 드는 방법을 알기 위해 책을 찾아보기도 했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이해될만한 말을 듣거나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순수하게 화두만 들어라.’ ‘이뭣고만 반복하지 말고 이뭣고 앞에 있는 구절과 함께 화두를 들어라.’라는 내용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고우 큰스님은 개인적으로 뵌 적도 있고, 봉화 금봉암에서 하루 머물며 수행하고 법문을 들었던 추억도 있다. 입적하신 그 스님을 지금은 뵐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생존해 계실 때 좀 더 수행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다.
입적하신 문경의 봉암사 적명스님과도 인연이 있다. 봉암사는 일반 신도에게는 석사 탄신일에만 개방되는 조계종단의 참선 수행도량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 사찰에서 하룻밤 머물며 참선하고 적명스님 법문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역시 인연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적명스님께서는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모두 퍼낸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꾸준한 정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던 것 같다. 혜국 스님 법문을 듣고 발심한 적도 있었고, 무여 큰 스님을 매월 찾아뵙고 법문을 듣고 공부했던 기억도 있다. 그 외에도 주변에 많은 스님들과 도반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고, 언제든 필요하면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 다만 인연만 깊을 뿐 공부를 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공부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가장 자신을 괴롭혔던 일이 먹고사는 일이었다. 가장이기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또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결과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가장의 책임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풍족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늘 남아있었다. 이제 그 마음도 내려놓으려 한다. 무책임한 결정일 수도 있지만, 무거운 마음을 들고 있다는 것이 나와 우리 가족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괜히 무리해서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나와 우리 가족의 삶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지금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일상 속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수행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가장의 짐에서 벗어나는데 긴 세월이 걸렸다. 아직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가벼워진 것은 사실이다. 주어진 것은 일이든, 상황이든, 사람들과의 관계든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마음공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다. 삶의 수용과 일상 속 수행이 내가 할 일이다.
동안거를 준비하며 나만의 행동지침을 만들었다. 화두 참선 3시간, 행선 2시간, 동안거 일기 쓰기, 불교상담 공부 2시간이 하루 일과이다. 남은 시간에는 참선 관련 서적을 읽으며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상 속 행복이다. 손주 돌보기, 경기 둘레길 진행, 상담 스터디 모임, 면접관 업무 등은 주어지는 대로 기쁘게 할 것이다. 술과 개인적인 모임은 하지 않고, TV를 보지 않으며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일상생활 속 지켜야 할 생활습관이다. 안거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나쁜 습관을 하나, 둘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쁜 습관은 과거 업의 결과이다. 나쁜 습관 한 가지를 제거한다는 것은 나쁜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고, 업장 소멸은 바로 깨달음이다. 매년 두 번의 안거를 통해서 나쁜 습관들을 제거해 버릴 수 있다면, 죽기 전 많은 업장을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깨달음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며칠 전부터 고우 스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으로 ‘이 뭣고?’ 화두를 들고 있다. 처음이라 잘 들리지 않고 지속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꾸준히 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화두를 들기도 한다. 걷기를 좋아하고 걷는 시간이 많은 내게 행선은 아주 중요한 수행 방편이 된다. 오늘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정진을 하는데 두통이 시작되어 멈추었다. 화두를 드는데 너무 용을 쓴 탓일 것이다. 좀 더 가볍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화두 드는 것이 필요하다. 적명 큰스님 말씀처럼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모두 퍼낸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꾸준히 힘들이지 않고 화두 공부를 지어가야 한다. 이제 주어진 일상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일상 속에서 화두를 들고 살아가는 것, 그 외에 달리 할 일은 없다. 안거 일기를 꾸준히 써서 기록으로 남겨 나의 마음공부를 돌아보고 싶고, 나처럼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동안거는 11월 8일이 입제일이고 2023년 2월 5일이 해제일이다. 안거 입제 전 일상을 단순화하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사전에 알려드려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입제일은 11월 초이지만, 입제 하기로 마음먹은 지금 이 순간부터 이미 동안거는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