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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pr 23. 2023

치료적 걷기

 가끔 인생은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풀리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또한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곱씹고 표현하며 더욱 자신을 힘들게 만든다. 최근에 아프리카를 다녀온 길동무 도니님은 그들이 전기도 물도 없는 상황 속에서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고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상황을 해석하는 바탕에는 천성도 있겠지만, 각자 살아온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 깔려있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해석하며 그에 대처하는 언행을 하고, 그 언행이 다시 쌓이고 쌓여서 자신을 형성해 나간다. 사람을 쉽게 정의하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언행과 생각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자신을 힘들게 만들기도 하고 편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스트레스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자신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기둘레길 18코스를 걷는 날이다. 기사님이 출발지점이 아닌 도착지점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상호 커뮤니케이션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도착지점에서 출발지점으로 가는 역방향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상황은 주어졌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출발지점으로 가는 방법 밖에 없다. 차로 이동해도 최소한 40분 이상 가야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도착지점을 출발지점이라고 생각하며 걸으면 된다. 이 코스는 출발지점에서 해발 775m인 귀목고개까지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역방향으로 가니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걸으며 오히려 쉽게 귀목고개에 오를 수 있었다. 또한 원래 진행방향대로 내려왔다면 돌길이 많은 긴 내리막길을 걸어야만 했다. 기사님이 도착지점에 내려놓은 덕분에 이 코스를 매우 쉽고 편안하게 마칠 수 있었다. 걷는 사람들은, 그리고 경기 둘레길을 오랜 기간 함께 걸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들이며 단지 길을 걷는 즐거움으로 웃고 떠들며 걷는다.     


삶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힘든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다. 매 순간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또한 행복만 존재한다면 고통이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행복은 고통과 반드시 함께 다닌다. 행복의 이면은 고통이고, 고통의 이면은 행복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고통을 느껴봐야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행복을 경험해 봐야 고통을 체감할 수 있다. 우리네 삶은 행복과 고통의 연속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곡선을 멀리서 바라보면 완만하고 긴 상승과 하강 곡선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미세한 상승과 하강 곡선이 춤추듯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주식 차트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자연 몰입> (에바 M. 셀허브, 앨련 C. 로건 지음)에 치료적 걷기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1941년 예일 대학교의 교수이자 정신과 교수이고 한때 미국 정신과의사협회장이었던 아서 H.러글스 (Arthur H. Ruggles)는 로드 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의 버틀러 병원에서 정신 건강을 위한 자연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 독창적인 프로그램에서는 치료적 걷기를 자연계에 대한 의식적 사고와 결합했다. 2011년 <환경심리학 저널>에 실린 한 연구는 자연환경을 적극 인식하면 야외 운동의 이점이 높아질 것임을 제시하면서, 러글스의 독창적 견해를 입증하였다. 실험집단에게 요구한 구체적인 활동은 환경에 대해 마음챙김하기, 자연계에 대해 시각화하고 추론하기, 소리를 인식하기, 아름다움을 적극 탐색하기 등이었다. 또한 숲을 걷는 동안 야외에서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중략) 2주 후 야외 활동과 의식적 몰입을 했던 집단의 심리적 이점이 통제 집단에 비해 의미 있게 높았으며 야외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세 번째 통제 집단보다는 현저히 높았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는 자연 속을 걸으면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 자료가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자연 속을 걸으면 즐거워지고 활력이 생성되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그간 체험적으로 느꼈던 것들이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산길을 걸으며 하는 행동들이 있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이 그 첫 번째 행동이다. 자연에는 생각보다 수많은 소리가 있다. 다양한 새소리, 낙엽 밟는 소리, 바람소리,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주변 소음 등등. 소리를 의식하며 걷게 되면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지면 다시 소리에 집중하면 된다. 산길을 걸을 때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소리 명상’이다. 두 번째 행동은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것이다. 바람을 맞이하고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숲의 향기를 맡는 행동이다.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는 방법이다.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바람과 온기 또는 냉기를 체감할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바닥의 접촉면을 느끼며 신체 감각을 깨울 수 있다. 또한 사진을 찍으며 피사체에게 집중하게 된다. <자연 몰입>의 저자가 말하는 ‘치료적 걷기’를 이미 실천하고 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특히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중요한’이라는 단어보다는 ‘필수적’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언젠가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가 온다. 우리 모두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시간에 치이며 사느냐, 아니면 시간을 즐기며 사느냐에 따라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또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산길을 또는 주변을 걷는 행동이다. ‘치료적 걷기’와 ‘사회적 걷기’가 결합될 수 있다면 이야말로 금상첨화다. 근데 이 좋은 방법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걷기 마당’이라는 걷기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이 방법을 실천하며 매우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들이다. 자연 속을 걷는 것이 주는 매우 큰 혜택을 누릴 수 있고, 길동무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바로 걷기 동호회 활동이다. 건강과 행복을 함께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바로 길동무들과 함께 자연을 걷는 사회적 걷기와  치료적 걷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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