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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r 23. 2024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7회 차 후기>

길동무들에게 감사를

 요 며칠 마음이 조금 무겁다. 마음챙김 걷기 설명회를 마친 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남에게 설명할 만큼 잘 알고 있지 않음에도 설명하려 했다는 어리석음에 관한 후회가 남아 있다. 최근에 상담 센터 두 군데에 지원을 해서 한 곳과는 프리랜서 상담사로 협약을 맺게 되었고, 다른 한 곳과는 일 할 수 없게 되었다.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탈락이 된 거 같다. 탈락된 것이 주는 좌절감보다는 과연 나 자신이 자격을 갖춘 상담사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힘들게 만들었다.      


 어제 TV에서 우연히 한국사 일타강사인 전한길 씨의 강의를 들었다. 자신의 실패담을 바탕으로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강의에 집중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마음이 무거운 만큼 더욱 울림이 컸던 것 같다. 그의 강의를 들은 후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다. 또한 어떤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해 보았다. 관심 있는 분야는 걷기, 명상, 상담, 글쓰기다. 명상은 남에게 지도할 만큼 공부가 되지 않았고, 겨우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을 정도다. 상담은 비록 자격증 취득한 지 만 9년이 지났고 꾸준히 상담을 해 왔지만, 아직 상담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글쓰기는 취미로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전문적인 작가라 할 수 없는 아마추어일 뿐이다. 그나마 걷기가 관심 있는 분야 중에서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고, 꾸준히 하며 누군가에게 도움도 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고민을 안고 오늘 걷기 모임에 참석했다.      


 참석자 중 한 분이 지난번 설명회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분 덕분에 설명회로 인한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최근에 소개했던 책 ‘숨’을 읽고 있다고 해서 책의 내용에 관해서 함께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오늘 처음 나온 렛고님은 다른 걷기 동호회에서 활동하다 잠시 쉬는 기간에 우연이 걷기 학교 밴드 페이지를 보게 되어 참석했다고 한다. ‘렛고’라는 닉네임도 밴드 페이지의 글을 읽고 글 속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마음을 내려놓고 흘려보내라는 그 단어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렛고님을 만나니 반갑다. 그간 밴드 페이지에 쓴 글 덕분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관심 있는 분야 중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두 사람을 만나며 바로 해결되었다. ‘걷고의 걷기 학교’를 잘 운영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 어둡고 무거운 마음이 밝아지고 가벼워진다.      


 렛고님은 비록 오늘 처음 참석했지만 친화력이 좋고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게 얘기하는 길동무다. 불교와도 인연이 깊고 오랫동안 공부를 꾸준히 해 온 그는 오늘 참석하기를 잘했다는 기쁨을 말로 표현한다. 고맙다. 렛고님은 침묵 걷기를 시작하는데 어깨 앞부분의 물통이 흔들리며 작은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경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차가 지나가는 더 큰 소음 덕분에 물통이 내는 소음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어깨가 아플 때는 허리 통증을 잊고 지냈는데, 어깨 통증이 사라지며 허리 통증이 드러나는 경험을 오늘 느낀 통찰과 함께 조심스럽게 설명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몸을 지닌 중생의 실존적 고통이다. 눈이 있기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고락이 함께 한다. 귀가 있기에 들리는 것으로 인한 고락이 있고, 몸이 있기에 몸으로 인한 고락이 있다.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삶의 기간 동안에 겪는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삶은 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삶의 사이클은 멀리서 보면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 곡선을 그린다. 하지만 상승 곡선의 일부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곡선 안에도 미세하고 급격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공존한다. 하강 곡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곡선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이 따로 없고 무한 반복이다. 중생이 겪는 고통은 끝이 없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고통을 배로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10 정도로 느끼거나 아예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삶의 실존적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 그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결국 자신이 만든 업보에 불과하다. 그 업보를 물리치기 위해 더 큰 업보를 쌓느냐 아니면 업보를 받아들이며 더 이상 업을 짓지 않느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오늘 함께 걸은 박성인 님과 렛고님 덕분에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네 가지 중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걷기’가 될 것이다. 요 며칠 느꼈던 자신에 대한 불편함  역시 내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그 허상에 속아 다시 업을 지었던 것이다. 걷기를 마친 후 커피숍에서 얘기를 이어간다. 본각 님은 걷기 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갖고 운영하는 것도 좋지만, 흘러가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삶의 수용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하신다. 고맙다.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지내왔다. 의도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교만해질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대로 산다면 저절로 겸손해진다. 따라서 저절로 자신을 낮추게 된다.     

 

 ‘걷고의 걷기 학교’는 비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며 나를 이끌어준다. 길이 나를 이끌어주고, 길동무가 나를 이끌어준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위해 걷기 학교를 운영한다는 말을 어불성설이다. 내가 시작한 일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이다.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삶이 된다. 좋은 가르침을 주신 길동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마음이 많이 가볍고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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