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고 Mar 29. 2024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8회 차 후기>

나의 길 

 이제야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서울 둘레길 관악산 구간을 걸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길을 걸으며 마음속에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 오는 날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날이든 걷는 것이 그저 좋을 뿐입니다. 인적이 드문 이 길을 좋은 길동무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은 걸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다. 길을 걸으며 그간 마음에 안고 있었던 모든 불편함을 저절로 잊게 됩니다. 잊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길 걷는 것을 좋아하고, 이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 일을 통해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늘 마음속 한 구석이 비어있었습니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지요. 이 공간은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채우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늘 괴롭고 불편하고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충족감은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로움과 행복을 선물해 준다는 것을.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날씨에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비록 몸이 불편하더라도 편안한 곳에 누워있기보다는 걷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몸의 불편함이 마음의 불편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편안하지만, 몸이 아무리 편안해도 마음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상담심리사로 상담을 통해 심신이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상담을 하며 편안하게 돈을 벌고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명분도 함께 하니 이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며 누군가에게 과연 정말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가에 대한 회의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의 상담 능력과 경력으로 과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물론 상담사로서 계속해서 공부하며 노력을 이어갈 겁니다. 그럼에도 아직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걷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심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입니다. 제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제가 길을 열면 자신의 의지로 참석해서 함께 걸으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멋진 구조입니다. 자신의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고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주인으로 스스로 몸을 움직여 찾아와서 함께 걸으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일이 함께 걷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들이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침에 나오는데 암 투병으로 고생하는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내용은 “덕분에 걷기를 매일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겠습니다.” 이 글을 보며 너무 고마웠습니다.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끔 시간 날 때 함께 걷고, 제가 걸었던 후기를 보내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걷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걸으며 투병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하는 일이 어떤 큰 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단 한 분에게라도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고마운 일입니다. 오늘 길을 걸으며 이 생각이 든 이유는 오랫동안 갖고 있던 삶의 문제가 갑자기 오늘 길을 걸으며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여전히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맞습니다. 마치 화두 공부하는 스님이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 깨우침을 얻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길을 걷고,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길을 열고, 길을 만들고, 길 만드는 사람들과 단체를 돕고, 길 위에서 길을 찾고, 길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가고 싶습니다. ‘월든’의 저자 소로는 남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미 하고 있는 일이라면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욕심이 문제입니다. 좀 더 잘 먹고, 좀 더 편안한 곳에서 머물고, 점 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좀 더 남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아가고, 좀 더 큰 차와 큰 집에서 살고, 좀 더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문제였습니다.     

 

 암 투병하는 친구가 보내온 글 중에 ‘그간 쓸데없이 복잡하게 살아왔다’는 글이 크게 다가옵니다. 만약 내일 죽을 사람이라면 이 모든 욕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무엇인가를 더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고, 누군가에게 더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을 더욱 생생하고 밝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버릴지 결정하게 만들어줍니다. 과연 내가 지금 선택하는 일이 죽음 바로 직전에도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무의미해질까라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제가 바라고 욕심내는 것이 죽는 순간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대신 제가 걷기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은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제가 걷기를 계속하고, 길을 안내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비 오는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과 수다를 떨리고 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걸으며 자연스럽게 저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저의 길입니다. 삶의 의미이고 보람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질병과 신체적 고통이 삶의 고통이 되더라도 그 고통을 수용하고, 대신 그 고통에 저의 삶이 모두 매몰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얼마 전에는 어깨 통증으로 고생을 했고, 요즘은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병원 치료를 받으며 몸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도 삶의 일부분이고 저 자신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신체적인 고통은 앞으로 더욱 많아지겠지만, 그렇다고 그 고통으로 인해 제 삶 자체가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평온함이 있습니다. 고통과 저와의 비동일시를 통한 삶의 지혜를 깨닫고 고통과 함께 살아가면 됩니다. 삶의 보람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몸을 지닌 인간이기에 느끼는 고통이고, 의식과 생각을 지닌 인간이기에 느끼는 보람입니다. 저의 감정과 상황을 분리하면 되고,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 길은 참 의미 있는 길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지도 않은 길이지만, 특별한 느낌을 선물해 준 고마운 길입니다. 함께 걸은 길동무들과 오늘 길을 걷게 허락해 준 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7회 차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