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이화(無爲而化)

by 걷고


띵샤를구입하러 전문 용품점에 들려 구입한 후에 가게를 둘러보다 우연히 벽에 쓰인 ‘무위이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라는 문구를 발견하였습니다. 계산대 뒤의 백색 벽면에 다른 어떤 장식물도 없이 오직 이 글씨만 쓰여 있어서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습니다. 요즘의 저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구라 그만큼 마음에 크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부, 업무, 노동, 글쓰기, 그림 그리기, 사람들과의 만남, 식사, 취미 활동 등. 그런 활동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과 비교가 있고, 목표라는 것이 주어지기도 하고, 스스로 목표를 정하기도 합니다. 비교에서 열등한 위치가 되기 싫어서, 경쟁에서 지기 싫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불만족 감과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경쟁에서는 이기려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활동이 우리 자신과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런 발전과 성취로 인해 우리 자신은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성취감이 주는 만족감과 행복감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하나를 이루고 나면 또 좀 더 나은 목표지점을 정해서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가끔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는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시지프스의 신화’를 연상시키게 합니다. 끝이 없는 무한 반복의 삶, 희망은 보이지 않고 그냥 앞으로만 가야만 하는 삶,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을 Doing-Mode라고 합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매 순간 쉬지 않고 활동하는 모습입니다.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며 9 to 6에 익숙하다 보니 과수원 일도 처음에는 그 시간에 맞춰서 출퇴근하듯이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연의 시계에 맞춰 일을 하게 되었다. 해 뜨면 일어나서 밭에 나가고, 해지면 들어와서 자고.” 그 친구는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시간의 개념이 바뀌었고, 경쟁자나 비교 대상자가 없으니 그저 주어진 일만 하면 되고, 나머지는 자연에 맡기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삶은 Being-Mode의 삶입니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하고, 결과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삶. 그 친구는 이런 자연의 섭리를 잘 이해했기에 시골의 삶을 아주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목, 금요일에는 심리지원센터에 나가서 상담을 합니다. 그 외의 시간은 가끔 강의를 하거나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자유로운 생활을 늘 그리워했으면서도 여유로운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등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괜한 불안감이 올라오고 기분도 썩 좋지 않습니다. 아직도 Doing-Mode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기에 TV에서 영화를 늦은 시간까지 보고 늦잠을 자는 경우에는 저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 저의 모습에는 아직도 결핍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에 비생산적인 저의 모습이 싫은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가끔은 자신에게도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저절로 길이 열린다고 얘기를 하면서도 정작 저 자신은 아직도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뭔가를 채우려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저를 못살게 굴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많이 단순화하였고, 만나는 모임이나 사람들도 많이 줄였습니다. 이런 단순화는 현대의 삶을 사는데 아주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마음속 채움에 대한 욕심은 아직 단순화를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 욕심이 남아있는 한 외부 상황을 아무리 단순화 한다고 하여도 ‘참다운 단순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무위이화’는 지금 제게 아주 시기적절한 말씀입니다.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고, 주어진 오늘 일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무위이화’의 참 뜻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 없이 하루하루 삶을 알차게 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잘 살았는가의 판단 기준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 하루를 알차고 충실하게 보냈는지가 되어야 합니다.


띵샤는두 개의 쌍으로 이루어진 동으로 만들어진 도구로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냅니다. 너무 강하게 두드리거나 약하게 두드리면 소리의 맑음이나 길이가 제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적절한 부드러움과 속도로 부딪쳐야 그 띵샤에 맞는 소리가 납니다. 우리의 삶도 역시 적절한 속도와 여유와 부드러움이 필요합니다. 띵샤와 ‘무위이화’ 가 제게 귀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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