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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y 04. 2024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12회 차 후기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손발은 부지런하게

처음 만날 때부터 소란스러웠다. 지난주에 걸었던 해파랑길의 파문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얼싸안고 안부를 묻고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한다. 아팠던 부분은 완전히 쾌유되었는지 묻기도 하고,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잘 지냈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개인이 모여 원 팀이 되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어쩌면 오늘을 기다리기 위해 한 주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금요일이 내내 기다려졌다. 날짜를 기다린 것이 아니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해파랑길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후기나 동영상을 보며 함께 해파랑길을 걸었다. 길을 걷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몸으로 직접 걷는 방법도 있고, 영상이나 글로 걷는 방법도 있고, 지도를 보며 걷는 방법도 있다. 이 중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직접 몸으로 걷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후기나 영상을 통해 걸을 수 있고, 다음 길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서울 둘레길을 걷고 있지만, 실은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해파랑길의 추억과 여운을 안고 걷고 있다. 길은 사람들의 이동을 위한 방편이지만, 단순한 이 기능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길을 함께 걸으며 사람들 간의 마음의 다리 역할을 해준다. 함께 걸은 길동무는 길 위에서 서로를 통해 배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도 배우고,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배우고, 타인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게 되며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걷는 행동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며 걷기도 한다. 그 생각은 성찰로 이어지고, 성찰은 변화를 만들어주며, 자신의 삶이 변화된다. 그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하며 자연스럽게 나눔을 실천한다.      


송광사 방장 스님이신 현봉 스님께서 5월 1일 밤에 입적하셨다. 선방에만 안주하지 않으시고 인도와 이스라엘 등을 1년 이상 배낭여행을 하신 열린 마음을 지니신 선지식께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같은 하늘에 계시지 않으니 안타깝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지 또 어디서 공부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불교 공부는 부처님 말씀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인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고, 더군다나 그 말씀처럼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선지식이나 열린 마음을 지닌 큰스님을 통해 가르침을 받고, 경책을 받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비록 스님을 뵌 적은 없지만, 우리가 모르는 선지식들이 드러나지 않고 수행을 하시며 보이지 않는 법의 손길을 나누어주고 계신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분들께 보은 하는 유일할 방법은 바로 수행을 하며 참다운 불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스님께서 “어려운 때일수록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손발은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감히 스님의 말씀에 사족을 달아본다. 머리는 차갑게 하라는 말씀은 머리를 비우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대부분 머릿속 이야기에 함몰된 상태로 살아간다. 머릿속 이야기는 결코 우리의 주인이 아님에도 그 이야기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이 소리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끌고 밀고 당기고 하며 주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머리는 늘 수많은 생각으로 인해 열기가 가득하다. 두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머리를 비우면 열기는 사라지고 저절로 차가워진다. 머릿속 소리가 사라지면 지혜가 드러난다. 지혜는 차갑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실지견의 지혜는 스스로 뭔가를 만들거나 상상하거나 판단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으니 저절로 쉬게 된다. 쉬면 열기는 저절로 사그라진다.      


지혜가 차갑다면 자비는 따뜻하고 뜨겁다. 천수천안으로 중생의 고통을 보며 그 고통에서 구해주기 위해 애쓰는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 자비심이고, 아 자비심은 따뜻하다. 힘든 사람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이 마음은 따뜻한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은 저절로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굳이 말로 표현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아도 마음의 파문은 주변에 퍼진다. 가끔 뉴스에 보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님의 현신이다. 이들은 모두 뜨거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세상에 퍼져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지혜가 없는 자비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지혜가 바탕이 된 자비를 참다운 자비라 말할 수 있다. 가끔 자신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를 하려는 어린 부모들을 볼 수 있다. 이는 어리석은 자비며, 지혜가 없는 자비다. 자신의 자식들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들 역시 중요하다는 지혜를 바탕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자비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지혜와 자비, 이 두 날개가 불교의 요체라 말할 수 있다.   

  

손발은 부지런하게 하라는 말씀은 몸을 잠시도 쉬지 말고 움직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거나 몸이 하는 일에 집중하며 머릿속 이야기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이다. 몸의 감각과 머릿속 이야기는 동시에 상존할 수 없다. 한 가지가 사라지면 다른 것이 저절로 나타난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머릿속 이야기는 사라진다. 몸을 움직이면 몸이 피곤해서 잠도 잘 잘 수 있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쓸데없는 머릿속 이야기를 청소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며 감각을 느끼는 일이다. 몰입과 감각의 느낌은 쓸데없는 생각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틱낫한 스님께서 말씀하신 설거지 명상이 바로 이것이다. 설거지를 하며 손의 감각, 물소리, 접시 닦는 감각을 느끼며 명상을 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중요한 순간이고, 이것이 바로 명상이다. 지금-여기에서 마음이 벗어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명상이다. “몸 있는 곳에 마음을 두어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이 바로 명상이다. 가만히 앉아서 망상을 하는 것이 명상이 아니고 손발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현봉 큰스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 걷는 순간 느끼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머리를 비울 수 있다. 머리를 차갑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길동무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마음은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손발을 끊임없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몸의 감각을 깨우고 느낄 수 있다. 감각이 열리면 열릴수록 머리를 그만큼 비울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걷기’다. 그것도 그냥 걷는 것이 아니고 마음챙김하며 걷는다. 마음챙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고, 걷는 일에 집중하며 몸의 감각을 느끼며 생각에서 해방되는 것이 바로 마음챙김 걷기다. 우리는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를 하며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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