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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ug 14. 2024

명상의 필요성


“명상은 떠오르는 것은 그것이 생각이든, 감정이든, 기억이든 인지하되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둔다. 떠오르는 것들에 주의를 집중하되 자애로운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매달리지도 물리치지도 않으며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지나가도록 지켜본다.”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2018)     


명상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이 있다. 그중 위에 나오는 글이 내게는 가장 명확하고 간단하고 단순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명상의 정의보다 왜 명상을 해야만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다음에 명상의 정의에 대한 이해를 한 후 꾸준한 수행을 통해서 평안하게 살아가면 된다.     

 

요즘 명상이라는 단어를 매우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만큼 명상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고, 다양한 명상법을 수행하며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명상 수행을 하고 있다. 명상이 유행처럼 번진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단어나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것, 즉 삶의 평온, 행복, 편안한 일상,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상심 유지 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행자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에는 위에 열거한 일반적인 이유와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명상을 수행하는 수행자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평범한 우리들을 위한 명상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종교가 생긴 이유는 또 명상법이 발달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의 불편함을 제거하고 평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삶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추구하고 늘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느냐가 우리가 종교를 찾고 명상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늘 추구하는 평안한 삶은 우리의 평상시 삶이 그다지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을 더욱 잘 그리고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좋은 추억과 경험은 쉽게 잊거나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나쁜 기억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다고 한다. “궁리 끝에 악심 온다.”는 말이 있다. 즉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쁜 결론과 생각에 이른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쁜 기억과 경험을 통해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기억만 가득하다면 좋지 않은 상황이 닥치는 것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목숨을 지닌 생명체로써 자신의 목숨과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기억은 빨리 잊고, 나쁜 기억을 오래 기억하며 다가올 나쁜 일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유전적으로 전달된 것은 아닐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쁜 기억을 오랫동안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함으로써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할 심리적 공간과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위험에 처할 때, 우리의 심신은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총력을 기울이고, 그 위험에서 벗어난 후에는 정상적인 바이탈 싸인 (vital sign)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늘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바이탈 싸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거나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스트레스 상황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늘 기억과 경험 속에 존재하며 일상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그의 저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머릿속 주인공’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주인은 각자 자기 자신임에도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머릿속 주인공’의 명령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우리의 생각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이 생각이라는 놈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것을 끌어 오기도 하고, 상황과는 무관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 이 ‘머릿속 주인공’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거나, 아니면 이 놈에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세뇌를 당하며 원래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이상한 언행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 때로는 그 언행을 한 바로 직후 후회를 한다. 이 후회의 경험과 기억은 다시 ‘머릿속 주인공’의 재료나 하수인이 된다.      


‘머릿속 주인공’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배우는 것이 명상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로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자신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자신 전체는 아니다. 게다가 이런 생각과 감정은 이미 지나간 과거로부터 일어난 것이므로 바꿀 수도 없고, 또한 이 과거의 것이 현재와 미래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놈들은 ‘머릿속 주인공’이 되어 마치 우리의 주인인양 행세를 하고, 우리는 종처럼 이놈의 말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머릿속 주인공’을 죽이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이 놈은 과거의 기억과 경험,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 그리고 과거나 미래와는 무관하고 무의미한 망상이나 잡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놈들이 나타날 때 이놈들과 싸우는 것은 이놈을 키우는 작업이 될 뿐이다. 형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이 놈들은 홀로그램 같은 영상에 불과하다. 영화는 끝나고 나면 흰 스크린 밖에 없다. 이놈들의 모습이 이와 같다. 이놈들은 과거나 오지도 않는 미래를 재료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영화를 보며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친다. 영화가 끝난 후 흰 스크린을 보며 그때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다.   

  

‘머릿속 주인공’과 싸울 필요조차 없다. 그 에너지와 시간조차 너무나 아깝다. 그냥 나타나면 나타났다고 알아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일단 이놈들과 씨름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싸움이 시작되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다. 홀로그램에 나타난 영상의 주인공과 싸워서 이를 물리치거나 죽일 수 있을까? 때려봤자 힘만 빠지고, 사랑해 봤자 꿈속 사랑이고, 욕을 해봤자 허공에 대고 욕하는 꼴이다. 홀로그램의 전원 스위치를 끄면 될 뿐이다. 그 전원 스위치를 끄는 방법이 바로 알아차림이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를 때 빨리 알아차림 하며 일상으로 되돌아오면 된다. 그놈이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알아차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단 알아차림 한 후에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거나, 별다른 할 일이 없다면 몸의 감각을 느끼면 된다.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 바로 ‘머릿속 주인공’의 홀로그램 전원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몸의 감각과 ‘머릿속 주인공’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감각을 놓치면 이놈이 나타나고, 감각을 느끼면 이놈은 저절로 사라진다. 감각 대신 명상의 대상으로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화두 수행자는 화두를 들면 되고, 호흡 명상 수행자는 호흡으로 돌아오면 된다. 굳이 명상 수행을 하지 않더라고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가수는 노래에 집중하면 되고, 화가는 그리는 그림에 집중하면 되고, 작가는 글 쓰는데 집중하면 된다. 방법은 아주 쉽다. 다만 꾸준한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예전에 친견했던 큰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모두 퍼서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수행을 해야 한다.” 이 말씀이 지금에서야 들린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챙김 걷기를 진행하고 있고,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걷기를 하기 이전에 마음챙김 걷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확립한다. 떠오르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빨리 알아차리며 걷기에 집중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걸으며 생각이 떠오르면 발의 감각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때로는 들리는 소리를 듣거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때로는 호흡에 집중하며 걷는다. 코 주변에서 느껴지는 들숨과 날숨의 감각을 느끼며 걷는다. 또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느끼며 걷는다. 바람을 느낄 수도 있고, 신체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수도 있고, 몸의 다양한 곳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도 있다. 감각 집중이 잘 되지는 않지만 생각이 떠오르면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어쩌면 집중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알아차리는 것이 좀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대상에 집중한다는 것은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많이 그리고 빨리 알아차리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꾸준하고 반복된 연습만 필요할 뿐이다.      


명상을 처음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믿을만한 스승과 명상센터에서 명상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명상의 원리와 방법에 대한 확신 없이 아류 명상법으로 돈벌이를 하는 단체나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또한 명상에는 스승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이 믿고 따르고 싶은 스승님의 글이나 법문, 책 등을 통해 스승님을 만날 수도 있다. 홀로 공부하는 10년 세월보다 스승을 찾아 헤매는 10년 세월이 훨씬 더 의미 있다는 말이 있듯이, 스승님의 존재는 명상 수행에서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인연 있는 사람과 수행단체를 통해 각자 명상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배워서 일상 속 평온함을 유지하길 마음 모아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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