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법

by 걷고

최근에 읽었던 책 ‘마음 챙김 명상과 자기 치유’ (존 카밧진 지음)에 실린 ‘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법’이란 글을 보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다. 시간이란 개념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하나의 규칙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에 쫓겨 살기도 하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힘들어하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 하루 24시간이라는 동일하고 한정된 시간을 갖는다.


시간에 대한 개념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분들에게는 시간의 정확성이 중요하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어디까지 언제 도착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정확성이 의미가 있다. 또 그 전제 조건 이전에 만들어진 조건도 있다. 예를 들면 A를 12시에 만나 B의 집에 1시까지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12시에 만나기 위해 집에서 10시 30분에는 출발해야 늦지 않는다. 또 12시에 A를 만나 B의 집으로 출발해야 1시에 도착할 수 있다. 시간은 이렇게 우리의 편의를 위해 서로 만들어 놓은 규칙에 의해 우리는 통제를 받게 된다. 직장인들의 시간과 농부의 시간은 그 개념이 다르다. 직장인은 9 to 6라는 근무 시간이 있지만, 농부는 해 뜨는 시간이 출근 시간이고, 해 지는 시간이 퇴근 시간이다. 농부는 농번기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지만, 농한기에는 휴식의 시간을 보낸다. 직장인들은 정해진 기간의 연차나 휴가를 사용한다.

약속도 시간 개념이 들어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에는 아마 이렇게 약속했을 것이다. ‘아침 먹고 마실 갈게’ 또는 ‘저녁 시간에 찾아뵐게요’, 또는 ‘정월 초에 인사 차 방문하겠습니다.’라고. TV에서 오래전에 본 내용이 기억이 난다. 노인 한 분이 아침 식사 후 저 산 너머에 사는 친구 집에 약속 없이 들러서 잠시 앉아 냉수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조금 후에 ‘나 간다.’라고 얘기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분들에게 시간이나 약속의 개념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반면에 도심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지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시간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을까? 해방되기 위해서는 ‘시간’에 대한 개념부터 바뀌어야 한다. 시간이 구속하거나 통제하는 수단이 아닌 것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오히려 우리가 시간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숫자 개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삶 위주로 변화되어야 한다. 24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느냐가 아니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로 변화되어야 한다.


저자는 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시간은 생각의 산물이다.’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만약 고문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분일초가 괴롭고 긴 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반면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이라면 한 시간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는 사고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규칙으로 정해진 시간은 고정적일 수 있지만, 사람마다 시간을 느끼는 장단 (長短)에는 차이가 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독서를 한다면 한쪽 읽는 사람도 있고, 열 쪽 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같은 시간이지만 수행 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되기도 한다. 시간은 우리 삶처럼 흘러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주어진 삶을 즐겁게 사느냐 괴롭게 사느냐에 따라 시간의 장단이 결정될 수 있다. 동시에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내느냐에 따라 장단이 결정될 수도 있다.


두 번째 방법으로 ‘더 많은 시간을 현재에 사는 것이다.’을 제시했다. 우리의 삶은 과거에 매여 있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가 있다. 현재가 사라진 것이다. 요즘 ‘Here & Now’라는 말을 많이 한다. '지금-여기'에 살자는 의미다. 과거의 회상이나 후회 속에 살거나, 미래에 대한 헛된 공상과 희망 속에 살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그 방법만이 유일하게 현재에 사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생각을 감각으로 변환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각은 존재와 경험을 분리시킨다. 우리의 말과 글 역시 존재와 경험을 분리시킨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경험과 통합되는 삶을 살라는 의미다. 늘 깨어있어야 더 많은 시간을 현재에 살 수 있다. 생각을 멈추고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지금-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


‘의도적으로 시간 내어 단지 존재하기’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단지 존재하기’란 '지금-여기'의 삶과 일치한다. 존재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좌 명상, 걷기 명상, 일상생활 명상, 먹기 명상, 듣기 명상 등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이다. 정좌 명상에서는 화두나 호흡에, 걷기 명상에서는 발의 감각이나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명상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흔히 얘기하는 설거지 명상, 청소 명상, 업무 명상, 수다 명상 등 일상의 모든 것이 명상이 될 수 있다. ‘의도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중요하다. 연습을 위한 의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숙해지면 언제, 어느 순간에도 가능하지만, 그 이전에는 일정한 인내와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단지 존재하기’는 Being-Mode의 삶을 살라는 얘기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늘 성과 위주, 뭔가를 추구하는 Doing-Mode의 삶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재에 존재하는 방법을 모른다. Being-Mode의 삶이란 그냥 자신으로 존재하는 삶을 얘기한다. 명상을 통해 Being-Mode의 삶을 회복할 수도 있고, 명상의 순간이 바로 Being-Mode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활의 단순화’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SNS 활동, TV 시청, 기타 중독으로 인하여 낭비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외부 사람들에게 공개하며 지지와 인정을 바라기도 한다. 자신은 점점 타인의 지지를 위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고, 자아는 점점 더 축소되어 ‘자아 실종’의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업무상이나 문화의 변화로 어느 정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저녁에 산책을 하거나 집 뒷산을 갈 때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간다. 그 시간만큼이라도 휴대전화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이다. 가끔은 손이 심심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곧 익숙해지며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산책은 이런 기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모든 종교에서는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이 있다. 그 이유는 심리적이나 신체적으로 복잡한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계율을 지켜야 생활의 단순화로 마음이 한 곳으로 안정이 되며, 지혜가 발현이 될 수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일반 신도들에게 오계(五戒)를 지키라고 한다. 산목숨 죽이지 말라는 말씀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의미이다. 주지 않은 물건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베풂을 행하라는 의미다. 바람직하지 않은 음행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라는 의미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바른말을 하며 자신과 타인을 배려하라는 의미다.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정신을 맑게 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의미다. 오계를 지킴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단순해지고, 그런 단순화가 마음의 평화와 지혜의 샘물을 모이게 한다.


우리 모두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 우리 모두 하루를 산다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다. 그 하루를 일 년처럼 살아갈지, 아니면 일초처럼 살아갈지는 각자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지금-여기'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외에 시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자신이 시간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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