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마법사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22회 차 후기

by 걷고

급히 가야만 할까요? 빨리 끝내야만 할까요? 조금 천천히 가고, 조금 여유롭게 가면 안 되나요? 너무 빠름 빠름만 추구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좋은 것만 추구하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숨이 찹니다.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기에도 힘든데 남의 속도를 따라가거나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높이 가야만 한다는 생각은 우리를 더욱 힘들고 벅차게 만듭니다. 따라서 삶을 즐기며 여유롭게 살아가기보다는 버티며 아등바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행스럽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직시하게 할 여유와 시각을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는 연습을 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연습을 합니다. 이런 여유를 찾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연습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습관에서 다른 습관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간 익숙해졌던 삶의 근육을 덜어내고 덜 익숙한 삶의 근육을 키우는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다가오고, 또는 어쩔 수 없이 연습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편안해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할 삶의 통과 과정입니다.

길을 걸으며 배우는 것 중 하나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마음의 뜰을 살피는 여유를 찾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며 자연을 만나고, 길벗을 만나고, 한숨 돌리며 자신의 마음을 살피게 됩니다. 길은 삶과 같습니다.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산길, 오솔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포장도로, 자갈길, 바위길, 부드러운 흙길 등. 우리가 원하는 길만 걸을 수는 없습니다. 삶의 과정에는 이런 길들이 모두 뒤섞여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피해 간다고 해도 다시 만나거나 더 힘든 길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 피해 가다기 사자를 만난 꼴이 되기도 합니다. 선택할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덜대고 걷든가, 그 길을 가지 않거나, 아니면 즐기며 걷는 방법입니다.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두 가지 선택만 남습니다. 불평하고 화를 내며 걷거나, 아니면 즐기며 걷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 후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결국 선택은 한 가지가 됩니다. 즐기며 걷는 것.

이제 어떤 방식으로 걷느냐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빨리 가는가, 아니면 천천히 여유롭게 가는가? 굳이 빨리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길의 끝은 없습니다. 다른 길이 이어질 따름입니다. 삶의 끝도 없습니다. 단지 삶이 죽음으로 바뀔 뿐입니다. 끝이 없는 길을 빨리 도착한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거나 어떤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조금 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는 있지만, 이는 전체 여정으로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휴식은 걷는 도중에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따라서 답도 저절로 정해집니다.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것.


주마간산하듯 빨리 걷는 것은 승용차를 타고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변 풍경을 보고 스쳐 지나갈 뿐 느낄 수는 없습니다. 길에서 개미의 행렬을 볼 수가 없고, 산길에서 뱀이 지나가는 것도 볼 수도 없으며 산길 중간에 쳐진 거미줄을 맛볼 수도 없습니다. 마을 구석구석의 평화로운 모습도 볼 수가 없으며, 어부나 농부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길벗과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더군다나 자신의 마음의 정원을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주변의 모습과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생명입니다. 머무는 것은 죽음입니다. 고인 물이 썩듯이.


또 한 가지 천천히 걷는 것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멀리 가거나, 오래 걷거나, 아무리 높은 산길을 걸어도 힘든 줄 모릅니다. 피곤함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길을 걸으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높은 산길을 걷는데 약간의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르니 이 길이 힘든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벗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오르막길은 길이 약간 위로 향한 길이고, 내리막길은 길이 약간 아래로 향한 길입니다.”라고. 그러니 오르막길이라고 싫어할 이유도 없고, 내리막길이라고 좋아할 이유도 없습니다. 빨리 오르막을 오른 후 쉬겠다는 생각, 또는 힘든 길이니 빨리 오르자는 생각이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듭니다. 천천히 여유롭게 오르막을 오르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뒤돌아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오르막길을 오르면 이 길은 힘든 길이 아니고 오히려 반기는 길이 됩니다. 천천히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며 걷는 방식은 언제 어느 길을 걷거나 상관없이 모두 통하는 걷기의 마법입니다. 어떤 길도, 어떤 날씨도, 또 길에서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즐길 수 있습니다. 단지 이 마법을 체득하기 위한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입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그리고 천천히 가라. 어제 서울 둘레길 관악산 구간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무척 무더웠습니다. 중간에 비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혼자 걸었다면 힘들었을 수도 있고, 중간에 빨리 내려왔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함께 걸었기에 걸을 수 있었고, 천천히 여유롭게 걸었기에 편안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못 본 길벗과의 재회는 걷기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천천히 걷고 중간에 휴식도 취하며 걸으니 몸과 마음은 편안하고 길은 더욱 정겹게 느껴집니다. 즐거운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길벗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중간에 비를 맞아도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시원하다며 비를 즐기는 길벗의 모습을 보며 더욱 길벗이 멋지게 보였습니다. 어떤 길이든, 어떤 상황이든, 길을 또 걷기를 즐길 줄 아는 길벗은 참 멋진 길벗입니다. 이들 모두 걷기의 마법을 통달한 마법사입니다. 그들과의 동행이 벌써 기대되고, 그들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더욱 커져갑니다. 어제는 이미 과거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만날 날은 미래입니다. 그들을 만날 기대와 그들에 대한 그리움에 오늘 저는 벌써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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