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한 좌절은 없다

by 걷고

삶과 목표 또는 성취와 좌절 같은 무거운 주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걷기와 맥주에 관한 얘기다. 비 소식 있는 날이지만 비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걷는다. 날씨는 사람 마음처럼 믿을 것이 못된다. 일기 예보가 시간에 따라 변하며 비 소식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만 무심히 떠있다. 그 구름이 맥주 거품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마음속에 맥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오늘 걷기 공지를 하며 맥주 집 한 곳을 뒤풀이 장소로 사전에 올렸다. 내가 길을 안내하며 뒤풀이 장소를 사전에 공지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길벗들에게 소개해주고 싶고 같이 가고 싶은 장소다. 별 특별한 것도 없지만 이색적인 맛을 즐기기에는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는 맥주 집이다.


뒤풀이 공지 때문인지 길 때문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섯 명의 용사들이 모여서 걷는다. 이 중 반 이상은 맥주 때문에 나와서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무슨 목적으로 걷기를 나왔든 중요한 것은 나와서 함께 걷는다는 사실이다. 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나오면 모여서 걷는다. 그다음에 뒤풀이를 하든 살풀이를 하든 한다. 걷기가 우선이고, 그 뒤의 일은 상황에 맡긴다. 걷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어제 우리의 걷기는 확실히 맥주가 우선이었고, 걷기는 맥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한 방편이었다. 어떤 사람은 맥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두 시간 전부터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갈증을 최대화시켜 맥주 맛을 극대화하려는 나름의 전략이다. 우리는 맥주를 희망으로 삼아 길을 걷는다. 그러기에 이 길은 쉽지는 않지만 힘들지도 않다. 그리고 포기와 좌절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안양천 둑길에는 황토로 만든 맨발 걷기 길이 무척 길게 이어져있다. 그 길의 절반 이상이 황톳길로 조성되어 있다. 지자체마다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조성해 놓았다. 길 끝나는 지점에는 걸은 후 발을 씻을 수 있게 세족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주민들은 건강이라는 꿈을 꾸며 이 길을 걷는다. 이 길을 조성하기 위해 예산을 배정받은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꿈을 꾸며 이 길을 조성한다. 같은 길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느낌이 다르다. 한 친구가 암 수술을 받은 후 건강 회복을 위해 집 주변 길을 한 시간 정도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가끔 그 영상을 보내온다. 그에게 길은 생명이다. 다른 친구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길을 걷는다. 그 친구에게 길은 상담센터이다. 우리에게 이 길은 맥주를 아주 맛있게 마시기 위한 길이다. 너무 가벼운가? 가끔은 가벼워도 되지 않을까? 삶은 생각하기에 따라 가벼울 수도 있고 무거울 수도 있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은 소풍이라고 했다. 세상 구경을 설레어하고 주어진 상황을 놀이터로 생각하며 자신의 꿈을 시로 표현했다.

마음챙김 걷기를 진행하는 날임에도 우리의 마음은 모두 맥주에 가 있다. 이날은 맥주가 마음챙김의 주제가 된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듣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만, 맥주를 마시는 순간에 그 맥주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면 ‘맥주 마음챙김’이 되지 않을까? 물론 길을 걸으며 맥주 생각만 하고 걸으니 마음챙김 걷기가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어떤가?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탈선을 하는 것도 삶의 통쾌함 아닌가? 마음챙김 길 안내자로서는 무책임한 발언임에는 확실하다. 그에 따른 비난은 기꺼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맥주를 마시며 한 친구가 왜 마음챙김 침묵 걷기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석수역에서 가양역까지 가는 이 길의 백미는 바로 한강변 걷는 길이다. 안양천을 따라 걷다가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나들목으로 빠지는 길까지 한 3km 정도 한강변을 걷는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이 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쭉 뻗은 길을 좋아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끝이 나타날 때까지 걷는 희열이 있다.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자연스럽게 따로 걷게 된다. 각자 걷는 속도에 따라 거리가 만들어지고 저절로 홀로 걷게 된다. 홀로 걸으니 침묵이 유지되고, 침묵 속에 걸으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생각이 지나가고 맥주 생각이 나거나 추석 명절 생각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마음이 이리저리 구름처럼 떠다녀도 이 길이 끝난 지점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맥주라는 목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생각이 한 곳으로 모여지고 침묵 속에서 걸으니 자연스럽게 마음챙김 걷기가 된다. 가끔은 세상을 소풍 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가볍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맥주를 마시며 우정과 사랑을 쌓아간다. 또한 진한 가족애도 느낀다. 자주 만나서 길을 걷고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모르는 사람에서 길벗이 되고 시간이 지나며 가족이 되어간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고, 우리 가족은 함께 걸으며 맥주를 함께 마시는 사람이다. 그리고 추억을 공유한다. 맥주 집 벽면에 우리가 다녀갔다는 우리의 족적을 남겨 놓고 왔다. 따라서 이 길과 맥주 집은 그냥 길과 식당이 아니고 추억이다. 우리에게는 길이라는 공통 주제가 있다. 길은 삶과 같다. 그러니 우리의 주제는 결국 삶이 된다. 삶은 시작과 끝이 있다. 걷기 위해 만나는 시점이 시작이고, 끝난 후 헤어지면 끝이 된다. 그리고 이 일은 반복된다. 윤회다. 윤회는 과거를 잊는다. 어제의 사람으로 오늘 그를 대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 오늘 그는 새로운 사람이고 나 역시 어제의 ‘나’가 아니다. 그러니 같은 사람을 만나도 이미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제는 이미 과거다. 오늘은 새로운 하루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새로운 사람이다. 새로운 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설렘과 기쁨으로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모든 가정에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한 한가위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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