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카메라 시점의 영화 <크로니클>
스포일러: 강함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나의 사물 혹은 사건을 나와 당신, 우리와 그들은 각자의 관념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카메라의 포커스도 사람의 시선과 비슷하여, 피사체의 모습은 촬영가에 따라 다르게 포착된다. 카메라는 촬영가가 바라보거나 바라보고 싶은 모습을 담아내므로, 피사체는 촬영가가 바라보는 세상 그대로의 재현이다. 촬영이란 저마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게끔, 그리고 그 기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세상은 기록되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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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의 카메라에는 걱정스러운 사촌 앤드류의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담기고, 스티브의 카메라에는 동정을 못 뗀 친구 앤드류의 가장 저돌적인 순간이 담긴다. 앤드류의 1인칭 카메라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는 그러므로 앤드류가 바라보는 세상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앤드류는 피사체를 찾지 못한 채 그저 모든 것을 촬영한다. 스티브의 말마따나 남들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방벽쯤으로 사용되던 카메라는, 피사체를 발견한 후 세상의 무언가를 폭로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한다.
제시 제이의 노래만큼 활달하고 사교성이 좋은 맷. 학생 회장에 출마할 정도로 리더쉽이 강한 스티브. 모두가 우러러보는 이 상급생들 주변은 말을 걸거나 곁을 지키고 싶어 하는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촌 맷과는 정반대로 왜소하고 소극적이고 겁이 많은 앤드류는 학교에서 ‘루저’ 취급을 받으며 따돌림을 당한다. 극심한 병색의 어머니와 소방수 일로 부상당한 아버지(리처드)로 인해 가정환경조차 열악하다. 하물며 그의 아버지는 보험금의 상당수를 술값으로 탕진하는 술주정뱅이다.
리처드는 틈만 나면 술에 취해 아들을 학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앤드류는 집에 있을 때마다 방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 밖이라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는 앤드류를 괴롭히는 ‘개자식(Asshole)’들이, 길거리에는 돈을 뜯는 ‘얼간이(Douche bag)’들이 있다. 매일 같이 들고 다니는 앤드류의 카메라에는 이들의 폭력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담긴다. 어느 날 앤드류는 세상의 폭력을 촬영하는 용도로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상급생 파티에서 알 수 없는 물질에 노출된 맷, 스티브 그리고 앤드류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염동력(Telekinesis; 떨어진 장소에서, 정신의 힘으로써 사람·물건을 움직이게 한다는 초심리학적 현상)을 얻는다. 처음에 이들의 힘은 순전히 재미를 위해 사용된다. 야구공으로 서로를 맞추거나 장난감 가게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유쾌한 날들을 보내는 이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능력에 빠져든다. 욕망에 기생하는 힘은 자가용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맷은 실수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혀 죄책감에 빠진다. 하지만 앤드류는 고의로 한 남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향한 맷과 스티브의 분노에 앤드류는 반발한다.
맷과 스티브의 주변과 달리 폭력에 시달리던 앤드류의 주변에는 언제나 방관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개자식과 얼간이’ 부류가 앤드류에게 폭력을 가할 때 분노하기는커녕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비웃고 조롱하고 동조했다. 재미를 위한 폭력 앞에 묵묵부답이던 사람들 속에서 늘 희생양이었던 앤드류는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고 스스로를 가책하지 않았다. 영양을 죽이는 사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듯이, 파리를 짓누르는 인간이 자신을 가책하지 않듯이. 그에게 맷과 스티브의 규칙들은 도덕적이라기보다 차라리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에 맷과 스티브는 앤드류를 억압하고, 그에 대한 반작용은 앤드류의 힘을 더욱 팽창시킨다.
1인칭 카메라 시점의 영화는 앤드류가 비디오카메라를 조종하게 되면서부터 3인칭 시점이 된다. 방벽 뒤에 숨어서 세상의 폭력을 목격하던 앤드류는 카메라의 촬영가임과 동시에 피사체가 된다. 이후 앤드류는 자신이 행사하는 폭력들을 카메라에 세세히 기록한다. 거미를 마디마디 분해시켜 죽이고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내던지고 따돌림을 주도하던 웨인의 이를 뽑아버린다. 그리고는 카메라 앞에 앉아 폐차를 찌그러뜨려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욕망에 기생하는 힘은 자제력을 잃고 스티브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앤드류는 아버지의 소방복을 입음으로써 폭력의 가해자들과 동등해진다. 처음에 그는 어머니의 약값을 빌미 삼아 길거리의 얼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지만, 앙갚음은 아무런 죄가 없는 주유소 편의점으로까지 번진다. 앤드류의 폭력은 재미 삼아 벌이던 그들의 폭력처럼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무분별하게 행해진다. 제동장치가 없는 앤드류의 힘은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여 한 도시를 장악해버린다.
도시는 앤드류의 초월적인 힘 앞에 피해자가 되고, 폭력은 그의 카메라에서 벗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스마트폰과 캠코더, 헬리콥터의 기록 장치와 저격수의 조준경을 통해 기록된다. '피해자 앤드류'가 목격해온 세상의 폭력성을 그들은 '가해자 앤드류'를 통해 이제 막 경험하려는 참이었다. 폭력을 외면하고 방관하던 이 도시의 가해자(일조자)들은 스스로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폭력을 목격했고, 폭력의 피해자가 얼마나 무고하였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앤드류는 시민들의 촬영 기기를 모조리 빼앗아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촬영한다. 이 세상이 가진 폭력성은 앤드류를 통해 기록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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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촬영가이자 피해자였던 앤드류는 폭력을 상징하는 피사체이자 가해자로 전락한다. 그를 '최상위포식자(Apex predator)'로 만든 힘이란, 적어도 이 영화에 의하면 일상의 유희에서 시작되어 폭력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그 폭력에는 타당한 이유가 없다.
영화가 끝나고, 앤드류가 머물던 촬영가의 자리는 비어있다. 그 자리를 관객이 채우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 영화는 이제 우리들의 세상이 된다. 방벽 뒤로 몸을 숨기던, 이 무고한 피해자의 자리에서 지금부터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