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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Jul 12. 2017

영화가 현대사를 다루는 법

1980년 광주의 한복판,  <택시운전사>를 중심으로

암살 (2015) - 12,706,391명

동주 (2016) - 1,174,735명

밀정 (2016) - 7,500,457명

박열 (2017) - 1,885,433명 [예매 2위]

 

*2017년 7월 11일 누적관객 수 기준



 최근 3년 간 한국 영화계의 동향을 바라본다. 2015년은 <도둑들>(2012)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최동훈 감독의 차기작 <암살>이 개봉한 해다. 감독의 주특기인 화려한 연출과 배우진에 힘입어 이 영화 역시 천만 몰이에 성공했다. 이와 대비를 이루어 2016년에는 한 명의 인물이 이끌어가는 영화가 찬사를 받았는데, <동주>의 강하늘과 <부산행> <밀정>의 공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연장선상에 이제훈이 있다. 2017년은 <왕의 남자>(2005), <사도>(2014),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또 하나의 역사물을 선보인 해다. 이제훈은 바로 그 영화의 주인공 ‘박열’을 연기한다. 위의 영화들은 공통점을 가진다. 한국 영화다, 이름이 두 자다, 그리고 모두 저들의 이름을 알렸다.


최근 3년 간 한국에서 제작된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들

 이들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시대적 배경이다. <밀정>은 1920년대, <박열>은 1923년 관동대학살 당시의 일본을 다루며, <암살>은 1933년을, <동주>는 조국광복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1945년을 배경으로 삼는다. 최근 3년 간 흥행몰이에 성공한 한국 영화들은 모두 일제 치하의 한국을 조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소재가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사에서 수 차례 다루어져 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토록 빈번하게 극장가를 찾으며 수준 이상의 실적을 꾸준히 거두어낸 적은 좀처럼 없었다.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일본 제국주의란 ‘유행’이자 ‘트렌드’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정도다.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

 근현대사 속의 식민지 국가를 상상해본다. 출생 국가에 따른 사실상의 계급이 있고, 국민에게는 주권이 없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치욕을 느낀다… 감성의 측면에서 보면 당시의 참상을 재구현해내는 일은 도리가 아닌 듯하다. 거기에는 덮어두고 싶은 누군가의 수치(羞恥)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감독들이, 또 많은 관객들이 당대의 참상을 직시할 수 있게 된 것은 100년이라는 세월 덕분이다. 자국에 불어닥친 비극을 시간상의 거리두기를 통해 이성의 측면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일제강점기는 자국민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단순한 미술 도구로서만 사용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아가씨>(2016)가 그렇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서울과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이제 1980년이라는 연도를 생각해본다. 아직 당신은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춘기가 막 시작된 무렵인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학번이거나 결혼기념일, 맏딸을 낳은 해거나 지인의 부고를 들은 해인지도 모른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모습 그대로를 직시하기에 우리들의 삶과 너무나도 가까이 있다. 만일 80년대 한국의 현대사를 영화로 풀어낸다고 한다면, 군사독제체제와 민주화운동과 같은 굵직한 역사의 부담을 얼마만큼 덜어낼 것이냐를 두고 끝없는 저울질을 해야 한다. 영화는 언제나 상업성을 띠며 대중은 교과서적인 영화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장훈 감독의 신작 <택시운전사>(2017)는 가족드라마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이 있다.


만섭은 <택시운전사>가 현대사를 풀어나가는 열쇠다.

 치료 불가한 병으로 아내를 잃고 딸아이를 혼자 키우는 홀아버지, 만섭.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면에도 관심을 접고 ‘생계형 인물’을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대 경제 성장의 탄력은 만섭을 고스란히 피해 가고, 빚 갚느라 미루어 오던 월세는 어느새 10만 원에 육박한다. 고장 나기 직전의 택시를 수리 한 번 맡기지 않고서 전전긍긍하던 만섭은, 5월의 어느 날 10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에 대해 엿듣는다. 당시 택시요금(800원)으로는 앞길이 막막하던 만섭은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무턱대고 그 일에 가담한다. 그렇게 이 소시민은 정체불명의 외국인을 뒷좌석에 태우고서 한국 현대사의 중심지 1980년 5월의 광주로 진입한다.


 학생시위가 끊임없는 벌어지는 서울에서도 만섭의 택시는 그로부터 완벽하게 동떨어져있는 듯 태평스러웠다.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하는-혹은 목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이 남자의 태평성대는 한국 현대사 속에 존재하지 않는 유머를 창조해낸다. 러닝타임의 절반가량을 만섭의 택시에서 함께한 관객은 중반부에 다다르기까지 피로를 느낄 겨를이 없다. 그저 입담 좋고 인상 좋은 택시운전사와 함께 달려왔을 뿐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서부터는 감독의 세상이 시작되지만, 거기에는 황태술(유해진)과 구재식(류준열)이 함께한다. 이 영화, 유머를 활용하는 방식이 이다지도 시의적절하다.  


사람(관객)은 사람(캐릭터)을 통해 수용하는 힘을 얻는다.

 5만 원을 손에 쥐고서 황급히 광주를 벗어나던 만섭은 딸에게 구두를 건네는 대신 재식에게 운동화를 신겨준다. 비로소 당도한 목적지에서 만섭이 느끼는 것은 개인의 무력함이지만, 우리는 거기서 크나큰 수확을 얻는다. <택시운전사>에는 좋은 악기들을 제대로 조율해 낸 장훈 감독의 성과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영화가 현대사를 다루는 방법은, 역사적 진술로부터 관객의 부담을 덜어내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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