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떤 소원 빌었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했지.”
아휴 또 그 소리다.
여행 중에 가까운 절이나 성당에 가도, 뒷산을 오르다 돌탑 쌓기를 해도 항상 나오는 우리 가족 건강 타령.
이젠 추석날 보름달에까지 감사를 하다니.
엄마는 매번 건강과 감사를 붙여 말했다.
마치 원래 건강하지 않기라도 했던 것처럼.
어린 시절,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로 설날이나 정월대보름, 추석과 같은 명절에 달을 보면 꼬박꼬박 소원을 빌었다.
“동생이 말 좀 잘 듣게 해 주세요.”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이번엔 꼭 면접에서 합격하게 해 주세요.”
등등. 그러나 반려되었다.
내가 너무 나쁘게 살았나 자책도 하고 이런 미신 따위를 믿고 소원을 빌었던 나 자신에 화도 났다.
어차피 안 들어줄 것 같으니 다음부턴 절대 소원 따위 빌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지만 명절이 되면 늘 달님 앞에 섰다.
그렇게 각자의 소원을 빌던 어느 날,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서 물어봤다.
특별히 믿는 종교도 없는데 두 손 모으고 고개까지 숙이며 무엇을 빌고 있을까.
엄마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지.”
참으로 이해 못 할 답변이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소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그 다급하고 절실한 것들을 모두 놔두고 이미 가진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떡하냐고.
엄마의 말이 진리임을 깨닫게 된 건 나도 엄마가 되고 나서였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한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간절한 소원임을 나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커지는 기대와 욕심이 내 눈을 흐리기도 하지만,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스레 감사한 마음이 솟아나곤 했다.
이렇게 건강하게 잘 커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누구인지 모를 어떤 존재에게 말하게 된다.
우리 가족을 건강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엄마 역시 그때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엄마도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건강하게 함께하는 이 시간에 감사하고 벅찬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넘어지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좌절하지는 않으며
내 소원을 이루어 나가는 길 위에 있을 수 있다.
나에게는,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고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라고 말하며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가족,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한 덕분이고 엄마는 그 사실에 감사했던 것이다.
달님이 매번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 어리석은 나의 착각이었다.
달님은 언제나 정확하게 내 말을 들어주었다.
간절히 바라는 ‘OO 하게 해 주세요’라는 말속의
OO을 지키고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올해 추석엔 비가 와서 보름달을 보지 못했다.
소원을 빌지 못한 게 아쉬워서 하루치만큼 기울기 시작한 보름달에게 빌었다.
아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언젠가 내 아이가 엄마는 달님한테 무슨 소원 빌었냐고 물어본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