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km도 버거웠던 내가,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기까지

무너졌던 여름을 지나, 다시 나를 세운 날

by 인생이란

전날 밤,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몰려왔다.

오늘 잠을 못 이루면 어떡하지.

내일 아침엔 뭘 먹지.

춥진 않을까.

18km까지밖에 안 뛰어봤는데, 진짜 완주할 수 있을까.

근데… 2시간 안에 들어오면 얼마나 짜릿할까.

메달 받으면 정말 신날 것 같은데.


이런 생각들이 뒤엉키면서,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새벽 5시.

첫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며 보내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멀게만 느껴졌던 오늘이, 생각보다 금방 와버린 것만 같아 뭔가 아쉬웠다.

몇 달 동안 가슴 졸이며 준비해 온 시간들이 이렇게 금방 지나갈 줄이야.


올해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마음도 무너졌고, 도중에 공황이 찾아와 하루가 통째로 흔들린 날도 있었다.


약에만 의지하고 싶진 않았다.

내 의지로 이겨내고 싶었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2km가 숨이 막혀서 멈추던 나였다.

6월부터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고

무더웠던 7월과 8월에도 멈추지 않았다.

달리기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지탱해 주는 루틴이 되었다.


지하철에 탔더니 웬 카본화 신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ㅋㅋ

다들 장비빨 너무 세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혼자 흥미로워하며 마라톤장에 도착했다.


출발하자마자 앞질러가는 사람들의 템포에

내 페이스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3km 지날 때부터였나,

어느 순간부터는 많은 사람들과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사실 자체가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못할 것만 같았던 하프마라톤을 진짜 달리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완주에 의의를 두자고,

혹시 가능하다면 Sub2(2시간 이내 완주)를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반환점을 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에서 반환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를 마주쳤다.


그 순간의 쾌감.

정말 그 짧은 몇 초가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이대로만 가면 Sub2가 뭐야, 1시간 40분대..?'


끌어올린 페이스 때문에 18km부터는 좀 힘들었지만

끝까지 버텨냈다.

그리고 결국 속도를 유지하며 골인.

생각보다 더 좋은 기록인 1시간 48분대.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공황 증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무엇보다 생일날 스스로에게 이런 성취를 선물했다는 게 너무 기뻤다.

올해의 나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작은 루틴들이 모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혹시 나처럼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여보며 극복해 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