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벚꽃이 한창이었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창원 폴리텍 대학 근처)은 벚꽃이 많이 피기로 유명하다.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을 가고 있었는데 바람이 하늘하늘 내 얼굴을 스쳤다.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멈출 줄 모르고 끝도 없이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았다. 그때 사실 많은 고민들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날 아침에 거울을 봤는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간 짜증이 났다. 그 주에 사람들도 많이 만나는데 그때는 좀 잘나보여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참 신기하다. 어떤 날에 거울을 보면 봐줄만했다가, 그래서 내 모습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가 다음날 보면 그렇게 추할 수가 없다. 그 거울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더 초라해지는 것 같다.
거울에 잘 비춰지고 아니고는 아주 사소한 스타일의 1mm 차이이거나 그날의 미세한 기분차이인 것도 대충 안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 나의 1mm 때문에 벚꽃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렇게 내 모습에 실망만하고 있었다.
예전에 tv에 나왔던 한 연예인은 자신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이 나올 때까지 하루에 머리를 여러 번 감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잘생긴 연예인도 1mm차이 때문에 엄청난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들은 아무리 봐도 그 차이를 인지를 못한다. 내가 만약 기적적으로 외모가 저 연예인처럼 잘 생겨졌다고 해도 매일 거울을 보면서 인상 찌푸리며 강박적으로 살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때의 나는 참 인기도 많고 잘생기고 항상 나이보다 앳되어 보였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아무 걱정할 것도 없었고 좋기만 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때도 항상 외모나 미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었다. 참 웃긴거다.
이런 논리로 따지면 지금의 나도 항상 모든 것이 불평이지만 10년 뒤에 생각해보면 또 이때가 참 좋았을 때라고 분명히 생각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도 장점이 참 많지 않은가? 이건 외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돈만 있으면 완벽해지겠지. 공무원 시험만 합격하면 완벽해지겠지.’ 항상 이렇게 생각하며 현재를 혹사시킨다. 그래서 현재는 항상 불행하다.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지금이 젊은, 건강 등 참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항상 어딘가 목말라있고 시원치가 못하다. 이래는 서는 아름다운 벚꽃을 느낄 수가 없다.
어차피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다 가진다고 해도 또 다른 걱정이 생길 것이 뻔하다. 나는 그렇게 공무원 시험 합격을 원하던 사람이 합격하고 나서 3년 뒤에 자살하는 것도 봤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걱정만 했던 과거를 또 좋았던 시절로 묘사한다. 어쨌든 현재는 항상 우울하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기적적으로 가지고 있는 9가지는 당연하다고 느끼면서 부족한 1가지에는 심하게 괴로워한다.
오늘도 나는 여러 가지 걱정이 기분이 완전 짬뽕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소름끼치는 사실은 몇 년 전에도 이글과 똑같은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내 장점에 만족하면서 살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까먹는다.
최소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나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여러 가지 추리로 지금 현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논리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아침에 거울을 봤을 때 내가 갑자기 잘생겨 보일 때이다. 이때는 내게 어떤 생각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마냥 들뜬 구름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공무원 준비할 때의 나는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어? 잘하면 다음 공무원시험에서 합격할 수도 있겠는데?’ 이런 욕심이 올 때면 내 이성적인 생각 따위는 사라진다. 우리는 인생이 뭔가 꼬일 때만 생각이란 것을 한다.
이런 장면은 무수히 많다. 애니팡에서 동물들이 연속으로 빠바방 터질 때, 볼링을 칠 때 스트라이크를 쳐서 남들을 이기는 순간에 우리는 논리적인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욕망의 노예가 될 뿐이다. 이 모든 순간은 내가 가진 9가지가 아닌 나의 1가지 부족한 점, 내가 욕망하는 그것이 내게 닿을 듯 말 듯 할 때 생겨난다. 그때 나는 또 모든 것을 욕망에 올인하고 내 기억까지도 반납한다. 그렇게 또 우리는 단기기억상실증이 되어간다.
내가 볼 때 이건 미친짓들이다. 나는 이 미친 짓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매일 감사일기를 쓴다. 감사일기를 쓴다고 해서 이것을 반복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짓을 상당히 늦출 수는 있다. 그리고 빨리 제 정신을 차리고 ‘생각’이란 것을 한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마음의 구조이론을 설명하면서, ‘자아’는 이드(id)의 욕망 그리고 슈퍼에고(superego)의 죄책감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줘야 한다고 했다. 그 자아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하며 욕망에 사로잡힌 나에게 뭐가 옳고 합리적인 선택인지를 (최소한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알려줘야 한다.
내 몸의 1m 밖에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나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나의 본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우리를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기에, 우리 본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생각보다 멋있고 긍정적이고 매력적이다. 바로 이런 사실을 우리자신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감사일기를 쓸 때 ‘내 주변의 소중한 가족, 친구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나는 정말로 1m 밖에서 자아의 입장이 되어 나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듯 말한다.
그리고 그 분리된 존재를 느껴본다. 내 안의 분리된, 이성적인 능력을 지닌, 나 자신을 보호하고 챙겨주는 ‘자아’의 존재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는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자아’의 입장이 되어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