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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Aug 01. 2018

죽을 가치도 없는 세상

누군가 법륜스님에게 질문하였다. 스님은 무엇을 하시고 싶은지요?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이 세상에 무엇을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없다. 그냥 되는대로 사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가치가 없냐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치조차 없다. 그래서 내가 자살을 안 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누비며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 스님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님이 저 말을 하는 순간 그게 무슨 뜻인지 감이 올 것만 같았다. 스님은 그냥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좋고, 밥을 먹으면 밥을 먹어서 좋다, 고 하였다. 마치 길가에 난 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하고, 못 하면 안 하다.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도 않고, 굳이 하지 않으려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더 살려고 허우적대면 더 깊이 물에 빠져든다. 그렇다고 일부러 죽을 필요도 없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물에 뜬다. 그러면 살아남는다. 우리는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어떤 움직임이 필요할 때,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데..



대학교 때 어떤 예쁜 후배가 나에게 리포트 하나를 부탁했다.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고 내 숙제도 안 하는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애가 부탁하는데 내 성격에 거절도 못 할거고, 어차피 담 주까지 해야 하니깐 내 걱정과는 상관없이 주말엔 어떻게든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 신경 쓰지 말자.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모든 상황이 끝나있을 것이다.


김장훈 노래 중에 "그대로 있어주면 돼" 이 노래를 우연히 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우리는 항상 자신의 자리만 지키고 있기만 해도 많은 일이 해결되기도 한다. 굳이 내가 애써 뭘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



나는 스님이 카찬차키스의 묘비명처럼 어떤 바람도, 두려움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 두 가지만 없다면 우리가 굳이 일부러 뭔가를 할 필요가 있을까? 바람과 두려움이 없으면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지 않을까?


스님은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자신은 평소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느꼈는데, 막상 고문을 당해보니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한다. 그런 두려움이 있으면 사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다. 스님은 70일이 넘는 단식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한 60일 단식을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상태가 아닐까? 그 상황을 견디려면 죽음의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나는 스님이 자신에게 1이라도 남아 있는 죽음의 두려움을 완전히 비우기 위해서 단식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람과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현재의 몰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에게 어떤 움직임이 요구되지 않는 것이고, 생각도 요구되지 않는 상태이다. 우리는 미래를 생각할 때 생각을 하고, 걱정한다.


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시간이 남았다. 약속 장소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저녁이라 점점 조명이 밝아지고 있었다. 이때가 가장 도시가 아름다운 것 같다. 그때 나는 그 순간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은데, 내게 있었던 아픔들은 지금 이 순간에는 없다. 내가 할 걱정들도 잠시 접어두었다. 어쩌면 그 아픈 기억과 미래의 걱정들이 진짜 존재하기는 할까? 믿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과거와 미래가 그저 희미한 다른 세계의 기억들인 것 같았다. 관념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힘이 있을까?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지금 여기에, 이 바람과 소리와 빛과 함께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나의 성공, 미래 같은 것들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내 안에 분명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나는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 내 안에 분리된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나는 어떤 바람이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할 뿐이다.


바람이 없다는 것은 현재에 만족한다는 뜻일 것이다. 어제 대니님과 만났다. 우리는 일자리, 연애, 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 그런 일도 잘 되었으면 좋을 것이다. 여자친구도 있으면 좋겠고 돈도 많으면 좋겠다,고 평소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하는 tv프로그램이 재미있다고 말했고, 점심 때 엄마와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연애소설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요즘 즐겨보는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대니님에게 보여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들이 많으며 이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백수이지만 우리는 어쨌든 취업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미래를 걱정한다고 더 일이 잘 풀린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런 성과들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저 최선을 다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바라지는 않지만 그 일을 하기는 한다라.. 역시 그대로 우리 자리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건가..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 그냥 확인만 하는 거다. 엄마가 추어탕이 먹고 싶다고 하면, 미꾸라지를 잡을 것이다. 붕어찜이 먹고 싶다고 하면 붕어를 잡을 것이다. 어차피 내 입장에서는 미꾸라지든 붕어를 잡든 별 상관이 없다. 그저 친구들과 또랑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기왕 즐거운 일 하는 거 엄마가 바라는 것 하면 더 즐거울 것이다. 


내가 처음 공부를 잘하게 되었을 때, 반에서 5등을 하기 전에, 최고의 성과를 낸 적이 있다. 그때 목표를 세우고 새벽 1시까지 열심히 해야지! 이게 아니였다. 새 학교, 새 학기, 새 친구의 산뜻한 기분과 설렘, 처음 받은 책 냄새가 좋았고 책장 넘기는 촉감이 좋았다. 새 연필의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새로운 필기체를 발견했었고 그런 순간들에 몰입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새벽 2~3시까지 있게 된 적이 많았다. 애초에 반에서 몇등 하겠다는 바람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필기하는 순간이 좋았던 이유에는 분명 그것이 공부와의 최소한의 관련성은 있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내가 바랐던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의 나침반(행복의 수단) 역할뿐이었다.


엄마가 내게 요구하는 것들과,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취업이나 연애 성공과 같은 것들은 어차피 내가 바랄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잡으면 사라지는 허상이고 공(空)이다. 나는 그것들을 향해가지만 결국 다 신기루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것들이다. 존재하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그 현재에 내가 충실하다면 바라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없게 될 것이다. 현재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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