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CI 검사를 받았습니다. 기질과 성격을 알 수 있는 검사인데, 기질 부분을 보고 충격을 먹었었죠. 세상에. 상담사 선생님의 말은 제게 너무 절망적이었어요. 상담사 선생님이 절망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TCI 검사에는 ‘자극추구’와 ‘위험회피’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극추구’ =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것
‘위험회피’ = 본능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는 것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해 볼 수 있겠어요. 이걸 또 자동차로 비유해 보면,
‘자극추구’ = 엑셀(앞으로 나아가는 것)
‘위험회피’ = 브레이크(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는 것)
저는 자극추구가 표준점수보다 조금 더 높은 편이었고, 위험회피는 표준점수보다 훨씬 높은 편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자극추구는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려고 하는데, 위험회피는 위험한 것을 회피합니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격. 그러니까 내면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무언가 하려고 하는데 스스로 계속 멈추고 무엇 하나를 정할 때도 엄청나게 고민하면서 끝내 정하지 못할 때도 많아요. 정하지 못하니,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나게 되고 그 책임도 당연히 스스로 지게 됩니다.
미칠 노릇이었어요.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고. 틀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 하나 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겼구나. 그래서 무언가 할 때 선택하지 못하고 도망 다녔던 것이구나, 하고요.
너무나 고통스러운 날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검사지를 받고 설명을 들으니 어렴풋이 생각만 했던 사실들이 현실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랬던 원인에 대해 알았으니, 잘 해결해 봐야겠다가 아니라. 역시 그런 거였어, 이전까지 느꼈던 고통들을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짊어지고 살아야 된다는 거야? 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내가 이걸 앞으로 해나갈 수 있을까? 정말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엄청난 불안이 올라왔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무게가 가늠되어 엄청난 공포가 느껴졌습니다. 삶의 극단으로 점점 향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버텨낼 재간이 있는지 저는 중립에 서있음을 느꼈습니다. 도저히 이대로 나를 혼자 내버려 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래도 예전에 일하면서 알게 된 지인분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했던 말은, “저 마음이 아파요.”라는 말이었습니다. 무심코 튀어나왔습니다. 내가 정말 살고 싶구나, 느꼈어요. 그래도 많은 사람이 제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은 싫어서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꾹 닫았습니다. 그러다 지인이 계속 물어봤어요.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전 고개를 떨구고 두렵다고 했습니다. 말을 하면 불안함이 올라올 거 같다고 했어요. 판단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얘기를 하게 되니, 그런 기질을 갖고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온 제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얘기를 하면서 공포감과 불안이 점점 물러가는 걸 느꼈어요.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생각이 줄었습니다. 제 얘기를 했던 진짜 이유는, 전날 밤,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네가 원하는 게 진짜 뭐냐고. 대답이 정말 아이러니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단 답을 스스로 했어요. 사람들과 만나면 상처받고 내면에 엄청난 고통이 찾아와서 힘들어하던 저였는데… 그 말을 스스로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함께 하다 보면 상처받지 않을까란 답을 또 스스로 했습니다. 그걸 앞으로 잘 훈련하고 극복해 가 보자란 것이 답이었어요. 아주 깊은 속마음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란 거였습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었단 것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나 자신을 아예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성공해야 돼,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잖아라고 하며 계속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기억이 났습니다. 제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리고 지인분에게 얘기한 건 정말 너무 잘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전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전에 봤던 문장이 떠올랐어요.
안미옥 시인의 문장인데,
‘너는 무서워하면서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기질상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순간이 많겠지만, 무서워하면서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정말 와닿는 문장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절망과 두려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밥처럼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이다’
- 시옷의 세계, 김소연
처음에는 밥처럼 마주 앉아 스스로가 직면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사람들과 나누면 그 절망과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항상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것이 너무 큰 힘이 되더라고요.
여러분들도 꼭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다면 그걸로 너무나 큰 불안에 떨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꼭 말해보세요… 여러분들의 불안을 나눠보세요. 두려움을 나눠보세요. 정말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삶은 힘든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과 나눠보세요.
혼자 짊어지려고만 하지 말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