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내 손에 필요한 목록을 쥐어준 후 빈 캐리어가 차곡차곡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준 것 같았다. 그러고는 캐리어가 닫히자, "나 먼저 떠날게~~~" 손을 흔들고 웃으면서 사라졌다.
언니가 병원에서 긴 잠을 자는 동안 나와 동생은 언니를 가장 언니답게 보내기 위해 준비했다.
나는 언니를 닮은 유골함을 찾아 주문했고, 동생은 언니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납골당을 찾아 계약했다.
언니가 떠나던 날, 간호사분들의 도움을 받아 언니가 생전에 아끼던 원피스를 입히고 소녀스런 플랫슈즈도 신겨주었다. 예약이 되지 않아 걱정했던 빈소는 언니가 떠나는 시간에 딱 맞춰 우리가 원하던 곳으로 비워졌고 상조회사에서 파견 나오신 여자 장례지도사님까지도 너무 신뢰가 갔다.
썰렁했던 빈소는 언니를 닮은 국화꽃으로 금세 꾸며졌고 언니가 생전에 부탁했던 영정사진도 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여 놓여졌다.
그렇게 언니를 떠나보내기 위한 준비들이 거의 끝나갈 무렵,
동생은 언니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마시던 화이트와인 한 병을 언니 앞에 놓았고 이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마시라며 한 잔을 따라주었다.
나는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았다.
많은 이들이 언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날을 지새웠고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가득 찬 빈소의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나는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을까 싶다가도 문득문득 언니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과 마주할 때면 언니 앞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입관식에서 언니는 곱디고운 핑크색 삼베옷을 입고 언니처럼 아름다운 꽃에 둘러싸여 두 눈을 꼭 감은채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기억될 언니의 모습을 그리도 곱게 단장해 주시고 정성을 다해 입관식을 이끌어주신 장례지도사님이 너무 감사했다.
발인날 아침 내손으로 찍은 언니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맨 앞줄에 섰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속 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품 안의 언니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가슴을 후벼 팠다. 당장이라도 사진을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런 결말의 각본이 짜여 있었던 게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린 언니가 원래 나의 언니였나 싶은 망상이 들만큼 그날의 현실은 깨진 유리조각처럼 떠돌며 한동안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언니는 떠났고 나는 언니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언니가 6개월 전 직구로 구매했던 라운지체어가 긴 항해 끝에 도착했지만 정작 주인은 누워보지도 못한 채 쓰임을 잃었고, 언니가 키우던 강아지도 엄마를 잃었다.
그리고 언니를 잃은 나는 그렇게 언니로부터 해방되었다.
언니를 보내고 얼마 뒤, 주인을 잃은 집에서 언니의 임종을 함께 한 동생들과 언니가 즐겨 마시던 와인을 나누어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