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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터진마돈나 Aug 18. 2023

꽃이 지다..

언니의 꽃은 더 이상의 색채를 잃고 진한 향기만 남긴채 그렇게 져버렸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 언니는 두 번의 복수를 뺐고 모르핀을 맞는 횟수도 점점 잦아졌다.

모르핀에 취해서인지 언니는 때때로 헛소리를 하거나 허공에 손을 휘저었고, 새벽에 깨서 가렵다며 온몸을 거칠게 긁어댔다. 하루하루가 위태로웠다. 병실 청소를 도와주시던 여사님마저 몰라보게 쇠약해져 가는 언니를 보며 안쓰러워 혀를 찼다. 

언니가 입원하고 5일째 되던 날, 그날은 어버이날이었다.

며칠째 음식을 거의 못 먹었던 언니는 언젠가 나와 먹었던 레스쁘아의 어니언습이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그날 저녁 배민에서 최대한 비슷한 곳을 찾아 주문했다.

언니는 "혜영아 너~무 맛있다" "음~~ 맛있어~~"라고 말하며 3분의 2 정도를 아주 행복하게 먹었고,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또다시 바보 같은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언니가 떠나기 전 먹은 마지막 음식이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언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면서 양치를 하고, 치실로 잇몸 구석구석을 훑고, 그것도 모자라 가글까지 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나를 깨웠다. 매번 찔끔찔끔 나오던 소변은 그날따라 시원하게 쏟아져 나왔다.

언니는 나를 보며 아이처럼 "아~~ 시원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러게~~ 오래간만에 시원하게 봤네" 라며 언니를 안아주었고 그것이 언니가 내 목을 잡고 나에게 안겨 일어난 마지막 순간이었다.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 나서 컨디션이 꽤나 좋아 보였던 언니는 분명 다시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언니는 더 이상 나와 눈을 맞추지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았다.

아무리 세게 흔들어도 반응하지 않았고, 제일 약한 부위를 꼬집어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TV에서만 보던 식물인간처럼 언니는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살아있는 죽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반혼수 상태로 3일이 지났을까 언니는 아침부터 새벽 늦게까지 눈을 감지도, 잠을 자지도 않았다. 마치 잠이 들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두 눈을 부릅뜨며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천장만 바라보며 지금 내 노트북 위의 커서처럼 눈만 껌뻑~껌뻑거리고 있는 언니가 안쓰러워 촉촉하게 적신 거즈를 눈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하나님에게 언니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대신 언니의 손을 잡고 언니가 더 이상 고통 없이 잠들게 해달라고. 꿈을 꾸듯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언니의 혼수가 시작된 아침부터 나는 거의 매일 언니가 곧 떠날 것 같다며 동생에게 전화를 했고,

수화기 너머 울음소리만 들려도 동생은 "지금 바로 출발할게. 진정하고 있어"라고 말하며 곧장 달려왔다. 그렇게 마지막일 것만 같았던 언니와의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갔고, 언니의 상태를 확인한 원장님의 배려로 동생도 나와 함께 병실에서 언니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언니가 혼수상태로 지낸 지 6일째 되던 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일까 몽롱한 상태에서 눈이 떠졌다.

열흘 넘게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시간 감각과 공간 감각은 사라지는 듯했고 몸도 여기저기 쑤셔왔다. 찌뿌둥한 몸을 돌리자 자고 있는 건지, 눈을 뜰 힘조차 없어서 감고 있는 건지 모를 언니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 여전히 거칠고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고, 그런 언니를 동생은 보조침대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좀 더 자지..."

동생에게 묻자, 등을 보이고 앉아있던 동생이 돌아보지 않은 채 혼잣말하듯 말했다.

"나 어제 언니 꿈꿨어."

.....

"꿈에서까지 나와서 나한테 떠나기 싫다고 그러더라..."

나는 어깨가 축 쳐진 동생의 뒷모습에서도 슬픈 얼굴이 보였다.

언니와의 이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는 듯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언니의 몸을 주무르고 시간에 맞춰 자세를 변경해 주고 몸을 닦아주고 몸 구석구석 부채질을 해주는 것, 그리고 듣고 있을 언니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는 것 뿐이었다.




잠깐이라도 복층 위에 있는 매트리스에서 편하게 눈 좀 붙이라는 동생의 제안을 나는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열흘 동안 소파에서 구겨져 있던 몸을 매트리스 위에 펼쳐 놓자 와중에도 편안함에 노곤노곤 눈이 감겨왔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동생과 간호사님의 주고받는 대화가 자장가처럼 귀를 간질거렸다.

'아침 회진을 돌고 있나..?'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거의 오열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 왜 그래~무슨 일이야.."

동생이 공포스러운 얼굴로 언니를 바라보며,

"언니 목구멍 안이 꼭 시체 같아.." "피가 고인 게 다 굳어서.."

동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려가서 언니를 보려고 하자 동생이 황급히 나를 말렸다

"안돼!! 언니는 그냥 보지 마.. 언니가 보면 쓰러질지도 몰라."

매일 거즈로 치아를 닦아주고 치간칫솔로 치아 사이사이를 닦아주었지만 한 번도 목구멍 안을 들여도 보지는 않았었다.

열흘 가까이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기에 목구멍 안까지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그날 동생이 어금니 쪽을 닦아주다가 거즈에 묻어 나온 피딱지를 보고 처음으로 언니 입을 벌려 목구멍을 보게 된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간호사님과 함께 핸드폰 조명을 켜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의 상태였다고 한다.

말 못 하는 언니는 그 지경이 되도록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또, 그 모습을 본 동생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간호사님께 소식을 전해 들은 의사 선생님들도 황급히 들어오셨고, 언니의 입 안을 보시고는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언니~~~ 이게 뭐야~~~ 어쩌다 이지경까지 됐어~~" 동생이 시체처럼 누워있는 언니를 부둥켜안으며 오열했다.

"언니~~ 차라리 이제 그만 떠나자.. 우리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더 이상 붙잡지 않을게.. 우리도 이제 다 준비됐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고통받고 그만 편히 쉬어.. 응..?"


선생님께서는 언니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표현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언니는 숨 쉬는 게 힘들어서 치아가 다 흔들릴 정도로 이를 갈아가며 숨을 쉬고 있었는데.. 코에서 넘어온 피가 굳어서 목구멍이 좀비처럼 되고 있었는데.. 나는 고작 며칠 잠 못 자서 힘들다고 투덜거렸던 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말도 못 하는 언니 혼자 저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나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커피도 마셨구나..




동생과 어제 다녀가신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자식의 임종을 감당하기엔 부모님은 이미 너무 늙고 약했다.

대신 지인 중에 언니가 제일 아끼던 동생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모니터에 표시된 언니의 산소 포화도가 점점 떨어져 갈수록 우리의 이별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젠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있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고마웠다고.. 내 언니로 태어나줘서 언니덕에 행복했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영접기도를 도와줬던 언니의 오랜 벗이 들려주라고 보내온 찬송가를 틀어 언니 귀에 대어주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안다

너의 눈물을 안다

너의 아픔을 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모난 네 마음까지도

이미 널 알고 있단다

너는 내게 와 편히 쉬어라.


처음 듣는 찬송가였는데 마치 하나님이 언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무섭고 불안할 언니에게 이제는 아무 걱정 말고 나에게 와서 편하게 쉬라고.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찬송가를 언니에게 들려주었다.

'언니.. 듣고 있지? 무서워하지 . 우리가 언니 곁에서 끝까지 함께 하고 있잖아..

그동안 힘든 세상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어. 좋았던 순간, 행복했던 시간들만 기억해 줘. 나도 그럴게. 더 많이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고, 더 일찍 언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 뭐야. 바보같이.'


언니는 체인스톡호흡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고 산소포화도 역시 점점 약해져 갔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임종 전 증상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께서 간호사님께 심전도기계를 가져오라고 지시하셨다.

그때만 해도 난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몰랐다.

곧이어 심전도 기계가 올라오고 그 뒤로 전화받았던 동생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동생은 차마 언니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양쪽에서  언니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언니와 눈을 맞추려고 계속 언니의 눈동자를 따라다녔는데 어느 순간, 언니가 처음으로 나에게 눈을 맞춰주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의 눈을.. 동생들의 눈을.. 아주 분명하게 맞추어 주었다.

우리의 작별인사에 언니도 눈으로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에게 마지막 눈을 맞추어준 뒤 언니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아직도 세상에 미련이 남은 듯 눈을 채 감지도 못하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처럼 모니터에서 울리는 삐 ~소리와 함께 약하게 뛰고 있던 그래프는 점점 일자가 되더니 급기야 일직선을 그리며 멈췄다.

그리고 비로소 선생님이 가져오라고 했던 그 기계의 쓰임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님이 언니의 가슴에 심전도 기구를 부착하고 더 이상 언니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걸 재차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곧이어 언니의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000님 5월 13일 17시 06분 사망하셨습니다."


나와 동생은 차마 감지 못한 언니의 두 눈을 떨리는 손으로 감겨주었고 그렇게 떠나기 싫어하던 언니를 하나님 곁으로 보내주었다.

언니는 끝내 내 이름도 불러주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을까..

내 생일인 5월 6일에 맞춘 듯이 5시 6분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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