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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터진마돈나 Aug 16. 2023

어쩌면 인생의 끝은, 아이에서 다시 아이가 되는 것.

언니의 시간은 그렇게 다시 거꾸로 빠르게 흘렀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언니를 케어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상황들이 몇 번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제는 언니의 입원을 허락해 줄 병원도 없었을뿐더러 입원을 한다 한들 지금보다 좀 더 편한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오히려 주렁주렁 언니 몸에 달릴 수액과 매일 아침 채혈 때문에 손이며 발등이며 심지어 발가락까지 혈관을 찾느라 언니를 더 힘들게 하진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렇다고 언니를 호스피스 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나 조차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암환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한방요양병원 리스트를 뽑은 후 시설과 의료진, 병원분위기를 두루 살펴보았다. 그리고 언니의 자료들을 챙겨 심사숙고 끝에 정한 요양병원을 혼자 방문했다.


강남 한복판에 번듯하게 세워진 병원은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였고 병실 또한 고급리조트의 객실처럼 밝고 아늑했다. 복층으로 된 병실에 보호자가 편히 잘 수 있도록 2층에 매트리스를 깔아 둔 세심한 배려도 좋았고, 통창 밖으로 보인 따뜻한 햇살을 품은 테라스도 마음에 들었다. 예쁜 화단으로 가꾸어진 테라스에는 원목으로 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의자에 앉아 언니와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장님과의 상담은 환자가 없는 보호자와의 면담이었기에 직설적이고 아플 만큼 현실적이었다.

언니의 진료기록들과 마지막 영상까지 확인한 원장님은 지금 당장 몸 안에 혈관이 터져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몸상태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차분히 말을 이어가기엔 언니의 상황이 너무 냉혹하고 처참했다.

원장님이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훔치며 나는 애써 남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언니가 이곳에서 마지막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언니는 집에서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게 사실 많이 힘들잖아요.. 집에서 모르핀을 놔줄 수도 없고.. 통증은 점점 심해질 텐데.."


"그렇죠. 말기암 환자는 결국 모르핀으로 통증을 조절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봐야죠.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환자가 떠날 수 있도록 저희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언니를 떠나보낼 병원을 혼자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보여준 요양병원 사진들을 보고 나서 병원 분위기와 시설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통증과 펜타닐에 지쳐버린 언니는 빨리 입원해서 모르핀을 맞고 편하게 쉬고 싶다며 당장 입원하자고 했다.


언니가 입원하는 날 나는, 이삿짐 수준에 버금가는 짐을 꾸렸다.

두 개의 캐리어와, 이불보따리 한채, 살이 없어서 엉덩이뼈가 배기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했던 마약 매트리스, 가습기와 스피커, 보조기구와 휠체어, 핸드폰 거치대, 언니의 애착인형인 돼지베개까지.


내가 한 짐 꾸리고 있는 동안 언니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의 마지막 반신욕을 즐기고 있었다.

언니는 다리도 스스로 들지 못할 정도의 몸이 되어서까지 곧 죽어도 반신욕을 고집했다.

자기 몸에서 항암 냄새, 펜타닐 냄새가 나는 것이 싫다며 안 좋은 것들을 반신욕을 하며 모조리 빼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수줍은 새색시 마냥 너무 행복해했다.

나도 언니의 목욕물을 받아주고 때도 안 나오는 언니의 등을 밀어주는 그 시간이 좋았다.

목욕을 끝낸 언니가 나를 부르면 언니는 코알라처럼 나에게 안겨 일어났다.

나는 언니를 의자에 앉힌 후 머리를 말려주었고 언니의 몸에 베이비향 가득한 로션도 꼼꼼히 발라주었다.

가끔씩 언니가 웃으며 "혜영아 나 얼굴에도 발라줘." 얼굴을 내밀 때면 나는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언니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다.

그렇게 뽀송해진 언니를 침대에 누이면 언니는 "아~~~ 너~~ 무 좋다~~ 그냥 이대로 잠들어서 다시 안 깨어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행복한 표정으로 슬픈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짐을 차에 싣고 올라오자 언니가 우리를 불렀다.

"나 반신욕 다했어~~ 나 좀 도와줘~~"

동생과 나는 언니를 욕조에서 꺼내주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언니는 욕조 안에서 머리까지 다 감은뒤 뒷정리까지 다 해놓고 다소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가 다리를 스스로 들지 못하면서부터 내가 혼자 언니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힘에 부쳤는데 그날은 동생이 있어서 마음이 놓이고 든든했다.

동생이 욕조 안에서 언니를 안고 나는 욕조 밖에서 언니를 일으켜 세우기로 했다.

언니는 동생에게 안겨 일어나려고 버둥거렸고, 동생과 나는 다리에 힘을 주며 언니를 지탱하려 버둥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어떡해~~~~~나 똥이 너무 마려워 ~~ 어떡해~~ 나 좀 빨리 일으켜줘~"라고 언니가 다급하게 말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동생과 나는 당황해서 더 허둥대며 언니를 일으켜 세우려 끙끙댔고 언니는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아~~ 앙~~~~~~난 몰라~~~ 앙~~~ 나 똥 쌌어~~~ 엉엉~~~ 나 어떡해~~~"


나는 순간 당황해서 몇 초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움찔했었던 것 같다.

그때 동생이 "언니 괜찮으니까 그냥 앉아서 싸도 돼. 언니가 기운이 없어서 힘이 풀려서 그런 거야. 괜찮아~~"

동생은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자식에게 말하듯 언니를 보듬었다.

한참을 울던 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받아주는 동생의 말에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아니면 되돌릴 수 없음에 자포자기를 했던 건지 그대로 얼음이 되어 볼일을 보고 말았다.

동생은 혹여 언니가 수치스러워할까 언니의 대변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맨손으로 치웠고 샤워기로 언니의 엉덩이를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두 명의 아들을 둔 엄마이자 세 자매 중에 막내인 동생이 그날 보여준 모습은 언니에게도 당연히 그랬겠지만 나에게도 두고두고 고맙고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나 온몸을 닦는 것에 열심이었던 언니는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수를 했고, 그날 이후 더 이상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기저귀를 찼다.


그리고, 그날부터 언니의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거꾸로 거꾸로 빠르고 고요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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