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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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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15. 2024

순도 높은 불신의 세계

240814-0817

퇴근길이다. 고속버스를 탄다. 본가에 들른다. 오랜만이다. 당분간 바쁠 것 같았다. 별렀다. 그렇지 않게 되었다. 다가올 구월은 일이 적다. 벌이가 염려스럽다. 프리랜서는 수입이 들쭉날쭉하댔다. 체감한다. 절감한다. 만만치 않다. 다니던 약국 두 곳에서 부당 해고 당했다며 사범님께 토로한 날, 뒤통수에 들러붙은 올망졸망한 눈망울을 기억한다. 도장을 달리자 따끔따끔 시선이 닿았다. 나름대로 염려하는 모양이다. 딱히 도움은 안 되지만 귀엽다. 하루 중 운동할 때는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단순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다.


더위를 먹는다. 위장이 죽는다. 칼로 얄팍하게 저미는 듯하다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아직 경련은 없다. 재작년 여름이었다. 쥐어짜는 통증에 사지를 뒤틀었다. 내시경을 거쳤다. 프로포폴에서 깨어났다. 몽롱과 개운의 중간에서 해롱거렸다. 이상 없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리라. 후텁지근한 한낮을 견디기 어렵다. 집 근처 카페에 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닭똥 같은 방울이다. 새하얗게 질린다. 기가 허한가. 쏟는 나는 덥지 않은데 주변인이 염려한다. 에어컨 밑에 기어들면 거짓말처럼 마른다. 글을 쓴다. 뭉텅이째 밀렸다. 공상을 언어화한다. 생각을 문자로 직조한다. 시름에 싸여 멍하니, 이렇다 할 만한 아무 생각이 없이, 하염없이. 일상에 부사를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 얼룩진다. 깔끔하지 못하다. 나름대로 다채롭다.


하얀 수국이 져 버린 정원을 걷는다. 고개 숙인 볕을 찍는다. 묵직한 셔터음을 듣는다. 잠자코 숨을 들이마신다. 휘발해 옅어진 풀내음을 맡는다. 그늘에서 고개를 쳐든다. 무엇에 눈을 빛내는 사람이 부럽다. 자신의 업에 관한다면 더욱. 질투가 난다. 나도 무언가를 목표하며 반짝반짝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 나를 그곳에 두고 온 것 같다. 그곳에 가면 그때 나와 지금 내가 이어질 것 같다. 어디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순도 높은 불신의 세계에 몸을 담글 뿐이다. 악재가 겹친다. 내 탓인가? 오래된 마음의 습관이다. 극도로 예민한 편이지만, 나를 예민하다 여기는 사람은 없다. 입을 닥친 덕이다. 저만치 오리 떼가 종종거린다. 어미를 선두로 뒷다리를 쭉 뻗는다. 흙길을 나란히 건넌다.


대중의 클래식화와 클래식의 대중화를 비견한다. 일상의 예술성과 예술의 일상성에 견준다. 일상의 예술성을 바라지만 예술의 일상성도 먼일이다. 궤에 누운 송장처럼 곧게 잔다. 이를 바득바득 간다. 불가항력이다. 혼자 지내는 동안은 나답게 잘 산다 자신하는데, 부모님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그럴 때면 내가 한 사람 몫도 못 하나 싶다. 그렇지만 더는 트로피가 될 자신이 없다. 몸이 자꾸만 쪼그라든다. 움츠리고 웅크려서, 작고 단단한 씨앗으로 돌아갈 것만 같다. 그렇게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봇짐으로 몸을 치장한다. 자취방에 돌아온다. 우편함에 봉투가 들었다. 편지다. 바다가 보냈다. 내일은 답장을 써야겠다.


— 제인의 일기 中


240208
1. 방실방실 - 논병아리 산책 가는 소리
2. 서럽고 쓸쓸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3. 순도 높은 불신의 세계에서 람사르 지정 주남저수지 오리 떼는 순도 높은 그리움의 세계로 헤엄친다
240209
1. 성균관 유도회 회장은 싸우는 차례는 지낼 필요 없다고 한다
2. 유교는 유연하고 열려 있는 철학
3. 햄버거나 마카롱을 올려도 좋다 - 공자는 그리 말할 것이다
240210
1. 오래된 마음의 습관 - 내 탓인가?
2. 극도로 예민한 편이지만 나를 예민하다 여기는 사람은 없다
3. 자기 일을 티 나지 않게 실수 없이 하는 사람
240211
1. 부사가 들어 있는 문장은 깔끔하지 않지만 부사가 든 일상은 즐겁다.
2. 하염없이 - 시름에 싸여 멍하니 이렇다 할 만한 아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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