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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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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16. 2024

바다에게 上

240818-0820

바다야. 평안하니. 편지 잘 받았다. 냅다 사과부터 던지다니. 참 너답다. 괘념치 않는다. 사치인 줄 안다. 훅 빠지는 월세에 휘청이는 요즘이다. 저는 괜찮아요,라며 부모님께 허풍 같은 호언을 펼친다.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사실 괜찮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안 괜찮을 것 뭐 있나 싶다. 다만 두 가지를 바란다. 첫째, 서울에 거주할 것. 둘째, 글을 쓸 것. 정착이니, 안정이니. 멀리 볼수록 가슴이 턱턱 막힌다. 당장 꾸준하자 다짐한다. 글을 매일 올린다. 열 명 남짓 읽는다. 그마저 못 미친 날도 잦다. 시간은 달린다. 폭주 기관차처럼. 저장한 원고는 점점 바닥난다. 두렵다. 이도 저도 못한 글로 끝날까 봐. 사방은 필패를 점친다. 위태위태한 삶이다. 지금이 길을 잃은 상황임은 분명한데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바른 길을 찾을 줄 아는데. 당장은 모르겠다. 양쪽 닫힌 외길에 갇혔다. 어떻게 빠져나가나. 내게 제 꿈을 유기하고 도망친 어릴 적 내가 치사하다.


플라타너스 잎이 더운 바닥을 구른다. 가을은 눈치 없이 더디 온다. 여름 감기는 독하다. 눈병이 났다. 식비 대신 약값만 나간다. 무지출을 염원하나 몸이 따르지 않는다. 안과와 이비인후과를 순회한다. 근무복 착용한 의사는 미끈한 가죽 의자를 핑그르르 돌린다. 증상을 듣는다. 시선을 맞춘다. 고개를 끄덕인다. 짧게 진찰한다. 미간을 모은다. 갸륵한 표정을 짓는다. 기대보다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업무상 반사 행위라도 당황스럽다. 느닷없는 감동을 받는다. 반성한다. 나는 공감하는 약사인가? 진찰한 의사만큼 환자를 진심으로 응대했나? 전문성에 걸맞은 가치를 발휘하나? 사회에 필요한 인력인가? 아닌 것 같다. 처방 몰리면 한숨 푹푹 쉬는 죽상 약싸개. 약 자판기만 못하다. 욕지기가 솟는다. 자기혐오에 젖는다. 가운 입은 꼴이 진절머리 난다.


문제는 팔 할이 돈이다. 연애는 선택이고 노동은 필수다. 생존해야 한다. 면접을 보러 간다. 한 시간 거리다. 소아과 층약국이다. 그럼 그렇지. 높은 확률로 5 인 미만 사업장이다. 체계는 미비하다. 시설은 처참하다. 출입구 바로 앞은 엘리베이터다. 승강기 여닫는 때마다 인파가 닥친다. 화장실이 코앞이다. 퀴퀴한 냄새가 바닥을 긴다. 조제실은 지하실 같다. 침침하다. 습하다. 에어컨이 동작하지 않는다. 건물 공용 복도가 더 시원하다. 유리문을 열어 둔다. 초파리만 한 냉기가 팔뚝에 닿는다. 절감한다. 육체노동 서비스직이다. 고운 옷 입기 아깝다. 땀 흐르게 뛰어다닌다. 내내 서서 일한다. 소란한 와중에 복약 설명한다. 시끄러운 일터가 지긋지긋하다. 붐빌 때면 토 나온다. 손가락을 튕긴다. 모두 사라져라. 눈앞에 아무도 없으면 좋겠다. 정 어렵다면 나라도 사라지고 싶다. 누구도 무엇을 요구하지 않기를. 제발. 비슷한 분위기 풍기는 지성인과 쾌적한 공간에서 좌식 근무하고 싶다.


240212
1. 혹여 정(혜 후배)이 허공에 부딪혀 꺼억꺼억 울다가 납작 엎드려 누워 침묵하고 있지는 않을까 잠시 염려가 된다. 아직 설이니까.
240213
1. 상수 -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도 일정 값을 유지하는 상수
2. 마음의 무게를 알다
240214
1. 삶의 무게를 알아 버린 사람은 늘 머뭇거린다 망설이게 된다
2. 가볍지 않고 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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