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 속에서 만난 삶의 끝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펼쳤다.
1부 ‘아침’은 아기 요한네스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2부 ‘저녁’은 할아버지가 된 요한네스가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되지만, 그는 평소와는 다른 몸의 가벼움을 느낀다. 소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암시하며,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와 아내를 만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죽음 이후에도 생전의 감각과 기억이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이 작품에서 죽음은 특별하거나 낯선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연장선처럼, 조용히 스며든다. 그 담담한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용히 내려놓게 한다. 삶과 죽음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대신, 이 소설은 평범한 일상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우정과 사랑, 탄생과 이별 같은 가장 익숙한 순간들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별한 자극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오히려 이 담담함이 더 오래 남는다.
처음에는 강렬한 감정이나 수려한 문장을 기대했던 내게 이 작품은 다소 밋밋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읽는 동안 서서히 다른 방식의 울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는 잔잔함, 그리고 그 잔잔함이 남기는 긴 여운. 왜 이 단순한 이야기가 이렇게 깊이 남는 걸까. 삶의 방식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멀리 돌아와 있기 때문일까.
어디선가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죠.”라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웅장하거나 현란한 문장이 아니어도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비출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순함의 미학, 그것이 이 작품의 힘인 것 같다.
어쩌면 저자는 등잔 밑이 어둡듯,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평범해 보이는 것 속에 숨어있는 보물들을 독자들의 가슴에 은은하면서도 깊게 새겨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만남과 이별, 기쁨과 고통, 태어남과 죽음마저도 물 흐르듯 받아들이며 살아가라고...
오늘 아침, 창밖은 유난히 화창했다. 날이 밝으니 마음도 함께 밝아지는 것 같은 이 단순한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눈 그리고 살아있는 몸의 감각들이 열려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이 죽어 이 감각이 모두 사라진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세계를 느낄 수 있을까. 과연 죽음 이후의 세계란, 정말로 아무 흔들림 없는 평화와 닿아있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나니, 특별한 깨달음보다 오히려 더 단순한 생각이 남는다. 살아 있는 동안, 이 감각으로 세계를 온전히 만나는 것.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