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서 퇴사했다.
비교를 통해 나를 선명하게 하는 것
회사에서 건강기능식품 브랜드의 교육팀장으로 3년 정도 근무할 적이 있었다. 우리 제품을 취급하는 판매원들에게 제품 교육을 해서 그들이 판매를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판매원들이 제품의 효능을 고객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도록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 판매원들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교육 내용은 우리 제품과 타사 제품을 비교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 제품의 효능을 고객들에게 아무리 잘 설명해봐야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판매원이나 자기 회사 제품이 제일 좋다고 얘기할 테니 우리 제품의 효능만을 가지고 고객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서 우리 제품의 어떤 점이 우수한지를 고객들에게 얘기해줘야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제품도 그렇지만 사람도 홀로 있을 때는 그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40대 남성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 그 사람을 설명하라고 할 때와 젊은 여성 사진을 함께 주고 그 남성을 설명하라고 할 때를 비교해 보면 금방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비교할 수 있는 것을 옆에 세우면 특성이 분명해진다. 남성과 여성, 아이와 어른, 아파트와 전원주택, 주식과 부동산. 우리는 비교를 통해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사촌 형들과 자주 비교가 되었다. 나도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사촌 형들은 워낙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셨을 테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사촌 형들과 비교를 많이 당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것이 세상 싫었다. 비교하는 사람이야 의도가 있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기분만 나빠지는 것은 똑같다. 그런 내가 요즘 10살 된 딸아이에게 간혹 남의 아이와 비교해 가면서 잔소리를 한다. 같은 반 누구는 인사를 정말 잘하더라, 이모네 사촌 오빠는 만화책보다는 역사책을 많이 읽더라. 비교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분명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듣는 아이는 기분만 상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비교하는 행위를 통해 긍정적인 것을 얻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스스로 원하는 비교여야 하겠다. 누군가에 의해서 비교를 당하는 것은 말 그대로 당하는 사람의 기분만 불쾌하게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비교의 목적에 있다. 건강기능식품을 타사 제품과 비교해서 우리 제품의 우수한 점을 말하려고 했던 것처럼, 본인의 강점을 선명하게 하기 위한 비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약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폭력과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교하는 행위에 가치가 만들어진다.
나는 최근에 18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으로서 일을 찾고자 노력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학원에 들어가고, 원하는 직무를 할 수 있는 부서로 이동을 요청해서 옮겼다. 개인적인 시간을 내서 관심 있는 영역의 책을 읽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퇴근 이후에는 학습한 것을 활용해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코칭을 진행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뭐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했고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학창 시절 유난히 조용하고 소심했던 친구가 있었다. 목소리마저 여성스러웠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지방에 있는 전문대학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던 해에 해병대에 입대했다. 사병으로 입대해서 만기가 되었는데도 제대하지 않고 직업군인이 되었다. 한 대학 후배는 영업이 체질인 것 같다면서 영업부서에 입사하고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본인은 영업과 맞지 않다면서.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들어가 보면 본인의 특성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기존 환경에서의 나와 새로운 환경에서의 나를 비교해 보는 것은 나 자신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비교의 또 다른 방법이 된다.
나의 환경을 바꿔서 나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
18년이나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니까 아쉬운 감정이 들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비교적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일본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인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에 관해 이렇게 얘기한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나에게 새로운 일과 경험들, 새롭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가 기존에 무엇을 배웠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와 평생 함께할 일은 어떤 것인지를 찾을 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210117 천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