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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화영 Jan 23. 2021

자율적인 것은 항상 좋을까?

우리가 하는 일에 가치가 생기려면 필요한 것

회사를 그만둔 이후 매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 하던 보고나 회의,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사라졌다. 그 대신에 아침 이른 시간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내용을 이렇게 글로 써보기도 한다. 바깥에서 놀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집콕 운동회를 열기도 하고, 바깥공기가 괜찮은 날이면 동네를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코로나 때문에 하고 싶었던 걷기 여행을 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몇 주를 지내다 보니 그냥 시간만 흘러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쾌락, 몰입 그리고 의미.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서 하기는 하는데, 아직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음,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 그동안 생각만 갖고 있던 브런치에 글쓰기는 것을 해야겠다.


퇴사 이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끔 배달 어플을 통해서 음식을 배달시켜먹기도 한다. 배달의 민족 어플을 주로 사용하는데, 몇 년 전에 외부 세미나에서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 내용 중에 이런 얘기가 기억에 남아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정답이 모두 나온 것 같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봉진 대표의 얘기처럼 회사를 잘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미 우리는 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다.

조직에서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하는 대표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고 있다. 구성원 스스로 동기를 갖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자율성을 주는 것이다. 동기부여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인 데시의 자기결정이론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려면 3가지의 선천적인 욕구가 채워져야 한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유능감 욕구, 의미 있는 타자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관계성 욕구, 그리고 스스로의 행동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자율성 욕구이다. 자율성이 동기부여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은 다양한 연구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자율성과 관련된 재량권을 주는 것은 어떤 산업에서건, 어떤 유형의 구성원에게 건 전부 유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쓰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어야 동기가 생기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요즘 조직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 구성원들에게 자율성은 더욱 중요하다. 본인 업무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것을 리더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그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들이 업무에 몰입하는데 저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만으로 조직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최근에 경기도 고양시 근처 한적한 곳에 있는 카페를 들른 적이 있다. 공간이 넓은 2층짜리 카페였는데, 곳곳에 화초들과 동양화가 걸려 있었다. 벽에는 커다란 이국적인 시계가 붙어있고, 우리 일행이 앉아서 커피를 마셨던 테이블과 소파는 현대적인 느낌의 세련된 것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빈 논 풍경까지 이 카페는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카페를 운영하시는 노부부께서 좋은 물건들을 정성스레 모아 놓으셨을 텐데, 우리 일행은 이 공간에서 어떤 호감도 느끼지 못했다.  
어렸을 때 돋보기로 종이에 구멍을 내는 장난을 해본 적이 있는가? 쏟아지는 햇살을 돋보기로 초점을 맞춰서 모아내지 못하면 종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카페도 마찬가지이다.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객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일하는 회사에서도 각 자의 일을 통합해 내지 못하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구성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면서 동시에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과 통합을 함께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 가꿔진 정원을 본 적이 있는가? 훌륭한 정원은 좋은 나무와 꽃을 그냥 모아놓은 곳이 아니다. 공간을 명확하게 구획으로 나누고, 그 안에 나무와 꽃들의 배치를 정한 후에 조화스럽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원에서 방문객들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회사에서 자율과 통합을 함께 얻는 방법도 정원을 가꾸는 일과 비슷하다. 회사가 뚜렷하지 않은 범주들을 의도적으로 분리하고 명확하게 정의하면, 구성원들은 행동의 모호성이 줄어들고 그 경계 안에서 자율성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회사는 일의 목적과 방향, 일하는 원칙을 분명하게 세워야 하고, 그 안에서 구성원은 자율성을 갖고 일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많은 기업들이 소명, 비전, 핵심가치 등의 기업 가치관을 만든다. 기업의 가치관은 단순히 보여주기 식 이벤트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자율성을 줌으로써 동기부여함과 동시에 기업 활동에서 고객들을 위한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요즘 사회에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할 때 자율과 통합을 함께 얻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 기업의 상황에 따라 자율과 통합의 정도와 수준이 정해져야겠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재즈음악을 지향점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재즈의 특징이 최소한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최대한의 자율성인 것처럼, 회사의 경영 목적과 전략방향, 일하는 원칙 정도를 분명히 세우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동기부여된 구성원들이 고객과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그런 지향점을 갖고 회사를 운영함으로써 능력 있는 젊은 구성원들을 합류시키고 있다


나의 자유로운 활동들이 의미 가지려면?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제는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에도 초점을 맞추는 노력을 해야겠다. 그렇게 해야 나의 활동들에 의미가 생기고, 행복을 위해 필요한 한 조각이 채워질 테니까.

*많이 부족한 글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사람과 조직의 변화와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려고 해요. 읽어주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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