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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화영 Mar 03. 2021

콩밭에서 팥을 얻고 싶다면

암묵적 가정을 점검하자.

3월, 봄이 시작되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는 것은 나무에 돋는 새순으로도 알 수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걷는 산책길의 풍경은 한창 추울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황량하게 느껴졌던 갈색톤의 나무들은 옅게나마 초록색 옷을 입기 시작한다. 산책길 옆으로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다양한 풀들이 올라왔다. 보이지는 않지만 땅 밑에 무엇이 심어져 있는지에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오는 게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팀원들이 업무를 주도적으로 했으면 하는 팀장이 있다. 새로운 업무를 제안도 하고, 적극적으로 시도도 하기를 기대하지만 주어진 일만큼만 열심히 하는 팀원들에게 매번 아쉬움을 느낀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서 좀 더 책임감 있게 업무를 진행하게 하려 지만 생각만큼 권한 위임이 잘 되지 않는다.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가이드해야 한다'는 팀장의 생각이 권한 위임을 형식적인 것으로 만든다.

 
내부 구성원의 다양한 제안을 받을 수 있도록 사내에 제안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잘 활성화되지 않는 조직이 있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부보다는 외부의 객관적인 시각과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내부 구성원의 생각과 목소리는 잘 인정하지 않는 조직이다. 개발된 구성원 제안 시스템은 개발비용만 들어가고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암묵적 가정'이라는 것이 있다. 드러내 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말 그대로 '암묵적 가정'이다. 사람은 그냥 두면 나태해진다는 암묵적 가정은 구성원을 관리하기 위한 인사 제도와 시스템을 강화시켜나가게 한다. 동기부여를 위해서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는 가정은(사람은 말()이 아닌데도 그렇다.) 스팟보너스와 목표관리를 강화하게 한다. 썩은 사과 이론(썩은 사과 한 알이 바구니 전체를 망친다.)을 믿는 조직은 인사평가와 몇 가지 진단을 활용하여 부적합한 사람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런 암묵적 가정은 개인의 경험들을 통해 확인되면서 점차 굳어지게 된다.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스키마가 바로 그런 것이다. 스키마(Schema, 인지 도식)는 개인이 과거에 경험한 것을 근거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의미한다. 스키마는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상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우리의 정보 처리 속도를 높이고 나의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추가적인 정보를 구하거나 관련된 근거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덜 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판단과 지각의 오류로 이끌 수 있다.

리더나 조직이 어떤 변화 노력을 할 때 가로막는 다양한 저항 요소 중에는 우리가 쉽게 의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것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마다 제각기 갖고 있는 스키마로 인해 생긴 암묵적 가정들에서 나오게 된다. 땅 밑에 숨어있는 뿌리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이런 암묵적 가정들이 사람과 조직의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조직문화에 대한 정의에는 암묵적 가정과 유사한 개념들이 포함된다. 융(Carl G. Jung)의 '집단 무의식'이나 에드거 샤인(Edgar H. Schein) '기본가정(Basic Assumption)'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개념들의 공통점은 모두 조직문화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개인이나 조직을 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콩이 심어져 있는 밭에서 팥을 얻고 싶다면? 

땅 밑에 있는 것을 바꿔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심리치료과정을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표현했다. 무의식 영역에 있는 암묵적 가정을 수면 위로 올려서 점검하고 수정하려는 노력이 심리치료라는 것이다. 암묵적 가정을 점검한다는 것은 리더에게 권한 위임을 하게 한다거나 새로운 인사제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과 같은 실행 계획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운영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소프트웨어만 늘려가며 장착하려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암묵적 가정을 점검하고 수정한다는 것은 변화하고자 하는 방향에 맞게 리더의 사고 체계를 조정하고, 조직이 구성원을 바라보는 관점(인간관)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새로운 제도나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이전에 리더와 조직이 현재의 구성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수면 위에 올려서 얘기해야 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스스로 할 때 잘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는가, 아니면 정교하게 점검하고 가이드해야 하는 존재라고 보는가? 조직의 변화를 위해서는 외부의 시각과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보는가, 혹은 내부 구성원의 의견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기 어렵다고 보는가? 이런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운영체계에 맞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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