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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화영 Oct 27. 2023

아빠, T야?

채용 이후에 필요한 것

아빠, T야?

내가 와이프에게 얘기하는 내용이 약간이라도 잔소리 같으면 딸아이가 나에게 질책하듯이 하는 얘기이다. MBTI에서 설명하는 4가지 선호 지표 중에 한 가지가 F가 아닌 T냐는 것이다. 마치 T가 잘못이라도 되는 냥 하는 말이다. MBTI의 유행이 오래가는 듯하다. 지금도 초등학생 딸아이와 대화 중에 늘 상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끼리도 처음 만나면  MBTI 유형이 어떻게 되냐고 묻기도 하고, 심지어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이 지원자의 MBTI를 확인하기도 한다. 한 때 혈액형으로 사람들의 유형을 설명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MBTI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를 파악하고 싶은 욕구

아마도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중 하나이지 않나 싶다. 아주 옛날 사람들은 상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MBTI와 같은 일종의 도구를 통해서 본인의 유형과 타인의 유형을 알고 싶어 한다. 어떤 유형이 나랑 잘 맞고, 어떤 유형이 잘 안 맞는지 알면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MBTI와 같은 심리검사 도구들은 완전히 신뢰할 만큼 정확한 것인가?

대학원에서 코칭을 공부할 때 들었던 성격심리학 수업에서나 MBTI 검사 자격을 얻는 전문가 교육에서 내가 배운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리 검사 결과를 맹신해서 사람의 성격을 확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MBTI 결과를 통해 본인과 타인의 성격을 확정적으로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 같다. 너는 무슨 유형이다.  F는 이래서 좋고, T는 저래서 안 좋다. MBTI가 본인과 타인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마치 평가 도구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평가들

회사에서도 다양한 평가들이 이뤄진다. 채용 과정에서는 입사 지원자가 우리 회사에 적합한지 사람인지 평가하고, 입사 이후에는 적합한 사람을 뽑은 것이 맞는지 평가한다. 그 이후에도 일을 잘하고 있는지 평가하고, 동료와 잘 지내는지를 평가한다. 리더 직책을 맡으면 리더십이 있는지, 그것을 잘 발휘하는지를 평가한다. 회사와 경영진은 직원들을 평가하고 분류해서 어떤 의사결정에 활용하고 싶어 한다.  


지난주에는 회사의 리더 한 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입사한 지 3개월이 채 안된 분인데 회사와 Fit이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나는 그분과 일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옆에서 봤을 때 멋있는 리더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업무 경험과 훌륭한 과거 성과들,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분의 생각들과 일에 대한 접근 방식들이 좋아 보였다. 앞으로 우리 회사에 좋은 변화를 만들어 내실 분이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그분은 수습기간을 넘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채용 이후에 필요한 것

사실 그 리더의 어떤 부분이 회사와 맞지 않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회사가 채용하면서 기대했던 전문성이 없었는지, 업무 태도가 적절하지 않았는지,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했는지 내가 아는 바는 없다. 그렇기에 퇴사가 적절한 조치였는지 나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적합한 사람을 뽑았는지 판단하기에 3개월이라는 기간이 충분했을까? 외부에서 들어온 리더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던 것일까? 기존 직원들과 리더들은 새로 들어온 리더의 방향에 맞게 변화하려고 노력했을까? 그 리더는 평가받기 전에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일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리더가 이렇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회사에 남아있는 구성원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소비자 심리학에는 '구매 후 부조화'라는 개념이 있다. 소비자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난 이후에 그것을 정말 잘 구매한 것이 맞는지 불안감을 갖는다. 그런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는 데 그것을 '구매 후 부조화'라고 한다. 이는 소비자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개념이고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마케터는 그런 소비자의 심리를 해소해 주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한다.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도 이와 유사한 심리가 생기는 것 같다. 채용 후 부조화. 이 사람을 정말 잘 채용한 것이 맞을까.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까. 혹시 잘못된 결정은 아니었을까. 이런 의심이 자연스레 들기 때문에 사람을 잘 뽑은 것이 맞는지 계속해서 평가하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회사에서 Fit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채용한 사람을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다. 사실 채용프로세스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려는 노력보다 채용한 사람의 정착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적합한 사람을 뽑기 위한 노력이 끝난 이후에는 그 사람이 잘 적응하도록 적절하게 지원해야 한다. 잘 뽑은 것이 맞는지 불안감을 갖고 계속된 평가를 할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사람과 기존 직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겠다. MBTI와 같은 도구들은 그럴 때 사용되면 유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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