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껏 행동하기
대학교 4학년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당시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면 항상 친구들과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서 자소서를 썼다. 서로 자소서를 첨삭해주기도 했고, 기업 정보를 탐방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번 학교 앞 카페를 가는 것에 질리 때면 가끔 주말엔 번화가 쪽으로 나가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날은 자소서를 쓰러 주말에 한 유명 커피 가게를 가게 되었는데, 카페 바리스타 중에 나의 중학교 동창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게 얼마만인 건지, 반가운 마음에 카운터에서 제법 수다를 나누었다. 그리고 친구가 만들어 주는 커피를 픽업 해왔다. 근데 분명 작은 사이즈의 커피를 시켰는데 주문되어 나온 커피는 가장 큰 사이즈로 나왔다. 그리고 친구를 한번 쳐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본연의 일에 집중했다.
이후 가끔 그 카페를 방문할 때면 항상 그 친구가 커피 사이즈를 크게 해서 내어 준다던지, 샘플용 음료나 간식을 조금씩 내어 주던지 하는 서비스를 해주었다. 나에게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동료 몰래 조금씩 챙겨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서비스를 받아도 특별히 티를 내지 않았고, 뒤에서 개인 메시지로 연락해 항상 챙겨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동창 친구가 직원들 몰래 나에게 커피를 더 준 것처럼 내가 고마워하는 마음도 다른 사람들 몰래 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자소서를 쓰는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러 카페에 나갔다. 그리고 함께 카페로 향하던 길에 옆에 있는 친구가 말했다.
"야! 오늘도 저 카페에 네 친구 있으면 좋겠다. 하하하"
녀석도 내 동창 덕에 커피 서비스를 함께 받고 있으니 그것을 나름 인지하고 좋았나 보다. 그런데 뭔가 녀석이 이 말을 하고 나니 왠지 모를 찜찜함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가 않았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에 보이는 내 동창 바리스타를 보자마자, 친구가 "예쓰~~~!!! 오늘도 니 동창 있다!!!"라고 외쳤다. 이 눈치 없는 녀석이 왠지 사고를 칠 것 같다더니 그걸 대놓고 티를 내버렸다. 그리고 그날 커피는 우리가 주문한 그대로의 사이즈로 나왔다.
그동안 동창과 무언의 신호로 서로의 득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우리만의 아슬한 줄타기를 해오고 있던 것을 내 눈치 없는 친구가 판을 다 깨버렸다. 뭔가 내가 서비스를 바라고 카페에 가는 사람 같이 되어 버린것만 같았다. 그동안 서비스로 받은 커피들이 나에게 그대로 부담과 짐으로 돌아왔고 동창 바리스타고 이제는 마음에 우러러 나에게 서비스를 해주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물론 동창 친구의 서비스가 영원할 거라 생각한 적도 없고, 매일 그 서비스를 얻어먹기 위해 그 카페로 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친구의 조금은 눈치 없는 행동 덕택에 서로가 괜히 부담이 되게 된 것이 사실이다. 몇 달 뒤 동창 친구는 다른 점포로 이동했다. 후로 한동안은 동창 친구와 마주 할 일이 없었다.
우리가 상대방의 배려와 희생을 굳이 강요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스스로 나서서 해줄 수 있는 행동은 받는 사람도 크게 부담이 없다. 그리고 그 행동은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러 나온 행동이다. 하지만 그 행동을 크기가 적다느니 다음에도 또 부탁한다 느니 하며 마치 갑의 위치에 선 것처럼 행동한다면 상대방은 온전한 마음을 쓰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미묘한 인간관계의 모든 판을 읽어내는 센스, 그리고 어떠한 변화에도 평시를 유지하는 포커페이스가 되겠다.
시간은 흘러 나는 취업을 했고, 여자 친구도 생겼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 중 한 카페 점포에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몇 년 만에 동창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내가 취업해서 성장 한 만큼 이 친구도 이제는 점장이 되어 그 누구에게도 눈치를 보지 않는 자리에 위치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사이즈를 업 해서 주었다. 괜히 여자 친구 앞에서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가 눈치를 볼 일이 없는 순간임을 깨닫고, 그동안 밀린 감사의 마음도 사이즈를 업 해서 표현했다.
"항상 잘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