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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Oct 22. 2021

우리 회사만 재택 못하는 이유

 우리 회사는 도면 출도 시, 보고서 결재를 받을 시 아직도 서면으로 보고 받는다. 작성, 검토, 승인의 과정을 각 단계마다 담당자와 심의자의 친필 싸인이 들어가야 한다.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거나 원격으로 의료 진단을 내리는 요즘 세상에 정말 시대를 역행하는 문화이다. 나름 일본계 기업이라고 이러한 서면 보고 문화 또한 일본의 것을 가져온 것이다. 사실 이마저도 나름 현지의 한국 패치가 되어 도장에서 싸인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거라는 게 함정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도장에 굉장한 집착이 있다. 과거 전쟁이나 월급 시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이후 아직까지도 모든 행정 절차에 도장을 사용 중이다. 실제 일본에선 등본이나 대학교 성적증명서 따위를 뽑기 위해선 직접 해당 처에 방문을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다. 핸드폰 문자로 본인 인증과 클릭 몇 번에 대부분의 행정 문서를 출력 가능한 한국에선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의 원리 원칙을 고수하고 매뉴얼을 중시하는 문화는 원론적으론 맞는 듯하면서도, 지금처럼 빠른 변화의 대처와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실제 일본 현지에선 코로나19로 인해 시행된 대규모 재택근무 중 도장 결재를 받기 위해 다시 출근하는 웃픈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지난해 고노 다로 장관이 일본의 디지털 개혁을 단행하며 행정기관에 도장 폐지를 추진하기도 했다.


 여전히 과거와 전통에 얽매인 일본은 아날로그라는 낭만적인 말로 포장하지만, 사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디지털 후진국으로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주변 회사들 다 재택근무할 때 우리 회사만 안 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일본 잔재 청산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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