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기도 전부터, 내 머릿속엔 이상하게도 ‘맘충’, ‘무개념 부모’, ‘금쪽이’ 같은 단어들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아마도 뉴스나 커뮤니티 미디어 속 자극적인 이야기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육아는 늘 ‘피곤한 누군가’와 ‘참지 못한 사회’ 사이의 충돌처럼 그려졌고, 나 역시 어느새 그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도 혹시 그런 부모가 되면 어쩌지?”였다. 식당에 들어서면 조심스럽게 숨을 죽였고,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죄송합니다”가 반사처럼 튀어나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마치 사회에 폐를 끼치는 일처럼 느껴졌고, 누군가 도와줘도 “이게 진짜 호의일까, 아니면 감시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그렇게 나는 배려와 감시 사이, 그 얇은 경계선을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36개월을 넘기고, 육아에서 조금씩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문득 깨달았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느냐’는 점이었다. ‘내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전제를 스스로 깔고 있었기에, 세상의 배려조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많은 배려를 받았다. 경전철에서 양보받은 자리, 식당에서 마주친 따뜻한 눈빛,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이 건네준 짧은 인사까지. 그건 감시가 아니었다. 세상이 조용히 내미는 배려와 호의였다.
나는 이제 그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도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믿음을 내 안에 키워가고 싶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먼저 배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될 것 같다. 그 변화는, 내가 먼저 배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손길 앞에서 주저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 세상이 생각보다 훨씬 더 따뜻하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