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버스로 4시간 30분을 이동하여 폴란드 크라쿠프 근교에 있는 아우슈비츠로 갔다.
차창밖 풍경을 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심경이 복잡했다. 설렘과 긴장감, 약간의 두려움이 감돌았다.
제1 수용소로 가는 입구부터 삼엄했다. 나치 제국이 건설한 대규모 수용소는 수많은 수용자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고 학살한 곳이다.
철문 위에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라(Arbeit macht frei)’는 문구가 걸려있다. 어이가 없고 가슴이 턱 막혔다.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그 거짓말 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높은 담과 철조망이 촘촘하게 쳐져 있는 곳, 수용자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STOP’이라는 경고 문자와 해골 그림이 철조망에 걸려있다. 보기만 해도 오싹하다.
지뢰도 깔고 전기 철조망을 쳐서 그 당시 탈출은 거의 불가능했단다. 당시의 공포를 느끼듯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
삭막한 분위기속에 고압 전류 펜스와 해골 이정표를 보고 우리 모두 숙연해지고 말이 없었다. 소름이 돋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입구를 지나 들어가니 1940년 나치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만든 붉은 벽돌의 강제 수용소가 줄지어 있다.
이 수용소는 나치독일의 한 민족의 자유와 사상을 탄압하고 말살한 끔찍한 역사의 현장이자, 끝까지 고군분투한 인간의 강한 정신을 기념하는 장소였다.
오슈비엥침은 홀로코스트의 잔학성을 여러 가지 영상으로, 전시물로 참혹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려주고 있다.
이 수용소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에서 뼈아픈 역사는 나에게 큰 쇼크와 비애감을 주었다.
전시된 영상물과 설명이 그 당시의 끔찍하고도 악랄한 일이 일어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처참함을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안경, 수감자들이 사용했던 식기류들, 엄청난 양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신발들, 칫솔, 이름이 새겨진 가방들 그 모든 것이 그들의 비명처럼 들렸다.
특히 어린 아기의 그 작디작은 신발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코끝이 찡해졌다.
유대인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모포와 가발, 카펫을 만들어 독일에 팔았다 하니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잔학무도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죄 없는 사람들을 말로 할 수 없는 끔찍한 생체 실험도 멋대로 했다는 설명을 듣고 소스라쳤다.
수감자들이 기거하는 방은 소나 말이 자는 축사만도 못했다. 말할 수 없이 비좁아 서 있기도 불편했고 제대로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에, 비위생적인 생활로 전염병이 많았단다. 이런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또다시 성찰하게 되었다.
‘기차역’ 사진 앞에서 난 오열하고 말았다. 매일 수천 명씩 이 기차를 타고 실려와 가스실로 갔다. 도착하면 바로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 여성들, 어린이들을 죽음의 가스실로 보냈다. 독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약자다.
가스실은 샤워실처럼 되어 있고 샤워 시켜주는 것처럼 속여 옷을 벗어 보내어 학살했단다. 시신은 소각로에서 바로 태워 그렇게 무고한 생명이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1945년 기준 약 600만 명이 살해당했다. 그 중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
그 잔학한 가스실을 보러 가자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편으로는 궁금했지만 마주하고 서니 보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가스실 천장 구멍을 통해 가스를 주입하고 막아서 가스실에 새어 나가도록 하였다. 가스실 벽의 고통 흔적인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머리카락이 쭈뼛하고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을까? 온몸이 서늘해졌다. 비애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옆에 화장하는 소각로가 있다. 차마 보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왠지 여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끔찍끔찍하였다.
600만 홀로코스트, 인간이 악랄하다 해도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이곳은 인간의 간악무도함의 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울적한 마음을 부여잡고 발길을 돌렸다. 상처가 깊고 애잔한 역사만큼이나 철조망 넘어 드리워진 그늘이 오늘따라 더 슬픔을 고이게 하였다.
1942년 가스실 구조와 안내문이 게시되어있어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 마지막 절규의 손톱자국이, 몸부림치던 흔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런 일이 지구상에 두 번 다시 없기를 간절히 두 손 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와서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도울한 가슴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