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북동 문학기행

by 파묵칼레

푸른 하늘만큼이나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상쾌한 아침이다. 거리는 벌써 가을 색으로 많이 물들었다.

길상사는 1980년대 말까지는 청운각, 삼청각과 함께 고급 요정으로 손꼽힌 대원각이었다. 대원각 주인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동받아 약 천억 원이 넘는 대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시주하여 1997년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길상사는 도심 한가운데서 사찰체험, 불도 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는 옹달샘 같은 곳이다.


대중들의 수행 공간도 있고 일반인을 위한 상설시민 선방이 있어 개인 정진을 위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길상사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평화로운 분위기를 머금고 있다. 무엇하나 퉁그러짐 없는 공간과 장대하게 뻗은 나무, 쾌적한 맑은 향기를 품은 길상사의 자태가 쉼을 안겨준다.


진영각 쪽으로 오르다가 중간지점에서 문학 시간을 가졌다. 흘러가는 바람 끝에 앉은 맑은 솔향과 산새 소리가 한층 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시도 낭독하고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과 더불어 하는 공부는 풍요롭고 머릿속에 쏙쏙 잘도 들어온다. 그저 앉아만 있어도 지친 마음의 위로가 되고 일그러졌던 일상의 밸런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초콜릿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길상사의 정취가 가득한 진영각으로 올라갔다.

진영각에는 '무소유', '아름다운 마무리',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물소리 바람 소리', '오두막 편지' 등을 집필한 법정 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여러 가지 저서와 유품이 전시 되어있다.


스님의 흔적에서 숨결을 느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숙연함이 절로 일어났다. 내부 사진 촬영은 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좀 더 엄숙하게 스님을 맞이하라는 배려 같다.


스님의 낡아서 닳아진 장삼 자락을 보며 ‘무소유’의 글귀가 떠올랐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길상사의 울림을 안고 심우장으로 향하였다. 한적한 가을 길을 따라 걷노라니 알록달록 물든 담쟁이가 가을의 운치를 한층 더해주었다.


골목길의 정취, 한옥과 호화 저택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이 공존하는 단아한 곳, 유적지도 곳곳에 있고 역사적 의의와 문화의 여유로움을 주는 곳, 다채로운 색깔을 띤 성북동의 매력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동네 분위기가 정감 있고 편안했다. 대사관로를 중심으로 각 나라의 대사관과 관저가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참을 걸어서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만해 한용운의 어록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를 되새기며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발길 닿는 곳마다 성북동의 정취가 묻어난다. 구불구불 좁은 길을 천천히 걸으며 만해의 숨결에 귀를 기울인다.


심우장은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 집으로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남쪽을 등진 곳을 택하여 북향으로 건축되었다. 서재에는 심우장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심우에서 유래한 것이다.


내부에는 만해의 삶이 기록 되어있다. 이 집은 꾸밈이 없고 굉장히 수수하며 집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와 향나무가 집의 기품을 더해준다.


독립운동가이자 조선의 불교개혁에 힘쓴 승려이며 근대문학에 공이 큰 시인 한용운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앞마당의 끝에 서서 심우장의 면모를 낱낱이 들여다보며 고향 집 같은 편안함과 아늑한 풍경에 매료되었다.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의 문학기행 보따리는 길상사의 정취, 법정 스님의 삶, 붉은 벽돌담의 담쟁이에 내려앉은 가을, 만해의 조국을 위한 숭고한 숨결, 문학 이야기로 가득하였다.


먼 훗날 하나씩 풀어놓으며 성북동 가을 길을 추억 하고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