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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shi Hachi Apr 30. 2024

내가 소유한 것들이 잘 존재하고 있는지

질문. 되뇌는 말

1

내가 물건을 살 때 되뇌는 말은 ‘꼭 필요한가’다. 없으면 안 될 정도의 필요인지, 사면 좋은 정도의 필요인지. 저울에 올려놓았다 내려놓는다. 어떤 물건은 저울 위에 올려놨을 때 내려앉는 무게, 내 삶이 이 물건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달라질지 가늠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마트나 옷가게에서 물건을 살 것처럼 들고 다니는 시간이 늘고, 그러다 계산하기 전에 내려놓는 일이 잦아졌다. 물건을 들고 다니는 동안 그 물건에 마음을 쏟는다. 꼭 필요하다는 믿음은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카트를 밀고 매장을 돌거나 바구니를 들었다 내려놓는 동안 어느 정도 소유하면서 물욕과 함께 차츰 가라앉는다. 소유하지 않아도 소유하는 연습.


흥분과 욕심을 가라앉히고 투명하게 떠오르는 마음으로 소비하고 싶다. 새로이 새로운 마음 톺아보기(‘톺다’의 사전적 의미 중 “뱉기 위해 속에서부터 끌어올리다”라는 풀이가 가장 마음에 든다). 소비하기 전에 준비하는 깨끗하고 흰 종이 같은 마음.


계산하기 전 차가운 눈으로 바구니에 든 물건을 다시 본다. 사지 않을 물건을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놓을 때 발걸음도 가볍다. ‘필요하다’는 감정은 의지와 상관 없이 요구된다. 어떤 물건은 너무 편리해서 이런 편리는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한다.


마음 깊이 원하지 않는 것을 거절하는 연습. 한 번 거절하고 나면 두 번은 쉽다.


2

“소유한다는 건 보관 방법에 따라 존재의 유무가 갈린다.”

―임진아, 《아직, 도쿄》 중에서.


포스트잇에 적어두고 눈으로 되뇌는 말. 이 문장을 되뇌면서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과 보관법이 달라졌다. 같은 용도의 물건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세상에서 꼭 하나만 갖는다는 결심으로 물건을 구매하기로 한다.


어릴 적 필기구 욕심이 많아서 초등학생 때부터 이사할 때마다 추리고 추리며 싸 들고 다닌 검은색 볼펜만 몇백 자루가 될 정도다. 청색, 적색, 색색깔 형광펜도 빼놓을 수 없다. 흰 종이에 잉크가 말랐는지 테스트하며 조금 덜 나오는 것은 미련 없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버리던 모습은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다.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내가 나를 잊은 듯 순간에 목매던 시간, 멎은 듯 그만큼 오래 머물렀던 장소는 이따금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나를 초월한 자유의 공간이었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며 좋아하는 것에 살게 되는 순간, 나는 한 겹 초탈한 마음과 자유를 느낀다. 겹으로 둘러싸인 마음을 그제야 한 겹 내려놓고 한 겹 들어올려 환기하는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고아성 배우 인터뷰 한 대목.

“취향으로 보자면 저는 과거, 과거, 과거,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거든요. 전자책이요? 읽다 포기했어요. 연필요? 엄청 좋아하죠. 필기구? 아실 거면서. 노트요? 모닝글로리에 살아요.”

―김민정, 《읽을, 거리》 중에서.


물건을 소유하는 일이 마치 물건의 생사, 존재 유무와 관계되는 문제로 바뀌면서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살아 있는’ 물건만 보관하고 관리하기로 했다.


존재를 있게도 없게도 하는 것은 눈일까. 기억일 수도 생각일 수도 필요가 발생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보는 것을 절대적으로 좋아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 덜 보이는 것을 끌어내는 일도 좋아한다. 어떤 목격처럼 본 사람은 그곳에 있게 된다.


“무가 없으면 유가 없을 테니까요.”

―영화 〈애프터 양〉에서 양의 대사.


있게 하기. 보는 행위는 무에서 유를 싹 틔운다. 발견은 생겨나는 감각이다. 시선과 생각이 동시에 발생하는 때도 있고 눈을 통해 머리로, 감각을 통해 신체화되어 덧입혀지는 생각이 있다.


눈을 두는 것, 응시는 능동적 행위이다. 그러니 물건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 것도 결연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어쩌면 내 안에 정신이 있고 없고, 정신의 유무를 따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의식하는 것이 있다면 마음, 관계, 거울을 보지 않을 때 나의 신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형체가 있든 없든 내가 소유한 것들이 잘 존재하고 있는지, 혹시 내가 없앤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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