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 만들기
우연히 지나치게 된 동네.
그 카페에는 몇 가지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하나. 샷추가 무료
둘. 외부음식 반입 환영
셋. 매장 이용시간 무제한.
오픈과 마감을 함께 하셔도 됩니다.
아주 평범한 카페의 평범하지 않은 문구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런 친절한 문구를 써둔 카페가 궁금해져 커피 한잔을 마시기로 하고 들어가 본다. 꽤 넓은 공간에 여유 있는 테이블 간격, 시끄럽지 않은 배경음악에 편안함이 느껴진다. 자리마다의 콘센트를 보아하니 노트북 작업을 하러 오는 손님까지 환영하는 듯 보인다.
비어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곧이어 자리로 가져다주시는 커피. 커피잔에 받침대가 함께 나왔다. 이럴 땐 왠지 뜨겁게 내려진 커피에 더 많은 정성이 담겨있는 것 같다. 왜 드립 커피는 꼭 커피잔에 받침대가 함께 나오기도 하니까.
딱히 할 일도 없고 읽을 책도 없어서 커피를 홀짝이며 내부를 둘러본다. 홀에는 손님들이 잠시 가득 찼다가 금방 한두 테이블이 빠지고, 단골로 보이는 여러 명의 손님들이 주인장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며 커피를 사간다. 차분한 카페에 생동감 있는 분위기가 흐른다.
'오픈과 마감을 함께 하셔도 된다'라고 했지만 정말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오픈과 마감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어쩌면 홀에 자리가 꽉 찼을 때, 손님들은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구먼'하고 자리를 비워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까 카페 주인이 '눈치 같은 것은 볼 필요 없이 편안하게 머물다 가요'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쉽게 내밀 수 없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공간에 새겨두었으니 덩달아 카페를 찾는 사람들도 서로서로를 배려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을 베풀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하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도 이런 틈새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동기로 하고자 하는 일을 시도해 보고, 잠시 어그러져도 아랑곳 않고 다시 액션을 취하는 패턴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용기와 느긋한 마음. 옛날 옛적 이솝우화인 <해와 바람>에 나오는 나그네처럼, 스스로 외투를 벗으려면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볕이 필요하다.
쉬운 길로 가기 위해 편법이나 요령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도달해야 하는 목표나 성과에만 집중하면 그 과정에 긍정적인 것은 별로 남지 않는 것 같다. 어릴 때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그런 것을 꽤 많이 느꼈다. 콩쿠르이나 급수시험을 위한 곡들은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고 연습량에 꾀만 쓸 생각만 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쇼팽의 곡들을 칠 때면 한 시간에 몇 번을 쳤는지 굳이 셀 필요도 없었으며 자꾸만 틀리는 부분을 능숙하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스스로 건반을 누르며 만들어내는 음률에 몸이 가벼워져, 피아노 의자가 마법의 양탄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꼭 한 번씩 찾아온다.
음악에서 레이백(laid-back)은 기본 박자나 리듬보다 살짝 뒤에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드럼 연주에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피아노를 칠 때도 정박자보다 리듬을 살짝 늦게 타게 되는 곡들이 있다. 짧은 순간을 마음대로 잡아두며 혼자만의 재미난 재롱을 피우는 것이다. 그렇게 무슨 일이든 성실한 느긋함으로 레이백 템포에 맞춰서 해나가고 싶다. 성실함과 꾸준함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건 나도 모르게 해 버리는 자연스러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