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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본질

그리고 작은 성취를 기록하기

by 혜아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이는 일이라도 그 안의 디테일을 살펴보면, 사실 보이는 것만큼 멋지기만 한 일은 드물 것입니다. 오히려 자질구레한 작은 일들에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밑바탕에 두고 있으면, 하찮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정성을 들여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내재적인 가치 기준을 두고 일의 본질을 파악하면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즐겁게 겪을 수 있습니다.


외국인투자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며 머릿속에 북극성처럼 올려놓았던 일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Foreign Direct Investment Attraction)

우선 업무의 가장 큰 목적은 당연히 그린필드 투자 유치입니다. 궁극적으로 A 국의 입장에서 한국 기업들을 A국으로 투자를 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A국가의 입장에서 인바운드(Inbound)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애널리스트의 가장 주요한 목적인 거죠. 반대로 국내 입장에서 보면, A국가로 해외진출을 하려고 하는 국내 기업이 있다면 그 과정을 A국의 현지 정부와 함께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내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는 다양한 정부 프로그램 혹은 컨설팅 기업이 있을 것입니다.
FDI Analyst가 하는 일은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점이 있다면 최종 투자 목적이 A국가에서의 그린필드(Greenfield) 투자 유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업이 단순히 기술이나 서비스를 현지 시장에 공급하거나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공장이나 지사를 설립하여 현지 인력의 채용까지 이루어져야, 하나의 투자 유치 프로젝트가 성사된 것입니다.


국가 브랜드 인지도 향상 (National Brand Awarenss)

하지만 한 기업이 해외 시장에 그린필드 투자를 한다는 건 결코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사업이 아닙니다.

세계정세, 국가 정책, 국제 관계, 기업의 비즈니스 상황 등 무엇보다 수없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진출 계획이 있다 해도 긴 호흡이 필요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하나의 투자 유치가 성사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특히 저는 유럽계 기업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상황은 더 복잡했습니다.


코트라에서 발간한 '2025 해외진출 한국기업 디렉터리'에 따르면 '법인' 형태로 해외진출한 국내 기업의 지역별 비중은 동남아대양주(40.2%), 중국(24.1%), 북미(10.7%) 순이며 유럽은 7.8%에 불과합니다.


그 단적인 비중은 적을지라도 유럽은 한국의 중요한 해외 직접 투자처이자, 많은 기업들이 유럽에 생산시설 및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있으며 해외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적인 투자자가 될 수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 A국의 투자 환경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업무입니다.


마치 직접투자 유치가 영화 제목이라면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국가의 투자 환경을 알리는 것은 그 영화의 부제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FDI애널리스트는 잠재적 투자자에게 A국의 외국인 투자 환경, 비즈니스 협업 기회, 해외 기업에 대한 국가 정책(인센티브, 보조금 지급 등) 등을 프로모션 하며 국가 브랜드 인지도(National Brand Awarenss)를 향상하는 것이 또 하나의 업무 목적이죠.


저는 이 영화의 부제를 머릿속에 항상 염두에 두고 일을 했습니다. 매일 다양한 기업과 소통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무조건적으로 투자 유치의 대전제만 생각하고 달려든다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A국의 투자 환경과 시장 분위기를 매일 새로운 열개의 기업에게 알린다'와 같은 세부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날도 그럭저럭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날은 이렇게 작은 성취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것만으로도 어제보다 발전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결국 우리는 어제보다는 나아져야 하고, 최고의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있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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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