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의 미학 (1)

작은 움직임은 확실한 힘을 만든다.

by 혜아

얼마 전에 필라테스의 유래를 찾아보고 조금 놀랐다. 필라테스는 신체 중, 특히 복부의 안정과 몸 전체의 균형을 추구하는 운동인데 이것의 기원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대전 중 영국의 랭커스타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요제프 필라테스'라는 인물이 포로들의 운동 부족과 재활 치료, 정신 수련을 위해 고안하였고, 필라테스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매트리스와 같은 간단한 기구만으로 할 수 있는 동작을 집중적으로 개발한 것이 필라테스의 원형이 되었다.


이후 요제프는 전쟁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의 재활을 돕게 되는데,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저항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그리고 침대 양쪽 끝에 스트링을 달아 척추와 골반 등 자세 교정에 효과적인 운동법을 개발한다. 현재 '리포머'라고 불리는 필라테스 대기구 중 하나가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몇 년 전 필라테스가 한창 유행이나 트렌드와 같은 것이 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이 훌륭한 근육 강화 운동이 좋지 못한 이미지를 달고 다닌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의 근사한 겉모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자 고집스러운 편견이 생성되고, 미디어는 그 이미지를 과소비하며 편향성을 짙게 만들 뿐이었다. 도시의 여느 필라테스 아카데미의 홍보물을 보면 날씬한 여성들만이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아름다운 자세를 근사하게 자랑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신체를 단련하는 운동까지도 격렬하게 선을 그어놓는 느낌이 그리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벌써 4년째 같은 곳에서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했던 목적은 나의 몸 어딘가, 언저리에 숨어있을 근육을 찾아내어 그것의 힘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건, 필라테스는 신체를 정교하게 움직이며 정신을 단련하는 과정과도 같다는 것이다.


필라테스를 하다 보면 움직임이 적은 동작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우 1cm 남짓하게 다리를 끌어올리고, 다시 내리면서 코어의 힘을 기반으로 신체의 모든 움직임을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만 컨트롤해야 한다. 간혹 '이렇게 해서 무슨 효과가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 오히려 그때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힘을 주어야 할 곳, 빼야 할 곳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아주 미세하게 몸을 움직이며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것이다.


가동범위가 적은 동작, 그러나 확실하게 힘을 주어 아주 미세한 근육의 생성을 느낀다. 아니 사실은 잘 느끼지 못한다. 내게 이 과정은 작은 습관의 변화가 서서히 전반적인 삶의 형태를 바꾸어가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 변화는 상당히 고요해서 눈에 띄지 않고 긴 시간 동안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만 같다. 정체된 느낌은 매일 나에게 포기를 종용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놓을 수는 없는, 교묘하게 애매한 상황을 버텨낸다. 다음 단계는 '이제 포기할까?'하고 생각하는 것도 지겨워지는 것. 그 인계점을 넘어가면 좋은 습관이 나에게 뿌리를 내리고 결국에는 기질이 되는 것이다.


필라테스를 하는 마음도 이와 같았다. 예전에 누군가가 '3개월 정도 하면 효과가 있니?'하고 묻는 질문에 딱히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단적인 결과를 희망하며 이 운동을 시작한다면 금방 포기해 버리고 말 것 같다.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매일의 작은 움직임이 내 안에 확실한 힘을 만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단순한 생각을 기반으로 의지력을 넘어서는 시스템을 만들 때,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은 필라테스를 하며 배웠다.



필라테스 대기구 중에서 '체어'라는 기구는 특히 하체 근력을 강화하는데 효과적이다. 내가 사용하는 체어에는 각기 다른 무게를 지닌 네 개의 스프링이 달려있는데 그 방향이 밑에서 위로 향하고 있다. 그 항중력을 이용하여 하체나 어깨 부분의 근력을 향상하는, 주로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체어를 통해 하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체어


체어에서 필라테스를 할 때, 언제나 드는 생각은 이렇다. '나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구나'


찾아보니 우리 동네에 필라테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은 10군데가 훨씬 넘는다. 그럼에도 같은 곳을 4년째 다니는 이유에는 내가 좋아하는 강사님의 지분이 큰데 그녀가 새로운 동작을 가르칠 때 항상 강조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 동작을 완벽하게 해낼 필요가 없어요'

이 말은 하나의 동작을 엉성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힘들거나 어려워 보여도 일단 시도하면서 그 안에서 정교함을 찾아나간다. 몸에 힘이 드는 동작을 지속하거나 불편한 자세에서 코어의 힘을 사용하며 버티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나의 최대치가 객관적인 완벽에 가깝지 않더라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의 몸은 오늘도 조금씩은 완전해지고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와비사비'라는 일본어를 알게 되었다. 덜 완벽하고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을 뜻하는 '와비'와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하는 '사비'가 합쳐진 단어라고 한다. 자연스럽고 소박함을 중시하며 우리의 불완전함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일본의 전통 미학이다. 와비사비는 완벽한 계획보다 불완전한 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힘을 빼고 우선 시도부터 하는 것. 굉장한 힘을 부여해 주는 단순한 사실일 것이다. 심리적 허들을 걷어내고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곤 힘이 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필라테스가 나에게 주는 또 하나의 배움이다.


필라테스의 미학,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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