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
고등학생 때였나.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정문을 둘러싼 담, 야트막한 운동장, 광택이 느껴지는 책걸상, 칠판, 사물함, 사물함 위 게시판. 몸에 꼭 맞던, 때로는 크게 보였던 사물들이 한참 작았다.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나 작았구나.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으니까 조금 더 즐거웠겠지.
어른의 눈에 그 작은 것들은 한없이 작고, 어리고, 약하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인정하지 않으려는 쪽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애들이 무얼 아냐고. 먹고, 자고, 놀고, 학교 다니는 게 뭐 어렵냐고. 돈 벌고 일하는 게 훨씬 힘들다고.
당연한 생각이다. 가장 괴로운 건 언제나 현재이지, 과거나 미래가 아니다. 생각은 다른 생각으로, 갈등은 다른 갈등으로, 걱정은 다른 걱정으로 덮였다. 영화를 쭉 따라가면서 깨닫는다. '아이들'이 '우리들'이 되는 과정을. 현재의 고통에 너무도 충실한 우리들이, 이전의 우리들을 잊었다는 사실을.
가위바위보!
앳된, 소란스러운 목소리들. 팀을 나누는 소리다. 열 살 아이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 아주 조용히, 양옆의 눈치를 보는 단발머리 한 명이 보인다. 정처 없이 떠도는 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다. '이 선'은 결말을 알고 있다. 오늘도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할 거라고.
종목은 피구다. 피할 피(避), 공 구(毬). '공'이라는 매개체가 있을 뿐이지, 게임이라는 명목 하에 폭력을 용인한다. 머리를 맞추든, 세게 맞추든, 그래서 아프게 하든. 강자의 손에 공이 쥐어지고, 약자는 그 공을 피해야 한다. 선은 나름대로 열심히 피한다. 선이 못해서 같이 하기 싫다던 보라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하지만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다. 보라와 그의 친구들은 선을 지적한다. 이 선이 선을 넘었다고. 아웃이라고. 선은 목소리를 내보지만, 누구도 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빛과 목소리에 몰려 걸음을 옮기던 선. 이때 '심판' 역할을 하는 어른, 선생님은 등을 밀어 선 밖으로 내보내는 데에 동조한다.
넘지 않은 선을 넘게 된 이 선. 애써 올린 입꼬리와 이곳저곳 굴러다니는 눈이 한 곳을 응시하게 된 건 같은 반 전학생 '한지아'를 만나고서다. 손수 만든 팔찌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항상 배려하고, 의견을 묻고, 쾌활하고도 밝은 친구, 지아.
둘의 모습은 참 달라 보였다. 널따란 집, 영국에서 일하는 엄마, 선의 몫까지 용돈을 턱턱 내는 지아. 네 식구가 모여 옹기종기 모여 한 방에서 자는 선의 집, 한 번도 가지지 못한 핸드폰, 다녀본 적도 없는 학원. 시원시원하고 키가 큰 외동, 지아. 작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제 손으로 김치볶음밥도 만들 줄 아는 선.
두 사람의 여름방학은 서로로 채워지고, 찬란하던 순간은 개학과 동시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아니,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결핍이 만든 부러움, 부러움이 만든 질투심, 차마 나누지 못한 과거의 상처로부터.
같은 학원을 다니는 보라와 친해진 지아. 교묘하게 선의 시선과 말을 무시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이 훔쳐서 선물한 색연필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또다시 내몰린 선은 지아와의 여름방학이 담긴 색연필을 내놓았다.
선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지아에게 다가가고, 말을 걸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주눅 드는 상황에서도 선은 자기표현을 성심껏 해냈다. 비밀을 꽁꽁 숨기기만 하는 보라나 지아와 다르게 말이다. 차이점이라면, 선에게는 든든한 엄마와 동생 윤이 있다.
엄마는 피곤한 몸을 눕히느라 종종 선을 세심히 살피지 못하지만, 언제나 선의 편이었다. 어떤 잘못을 하든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 선택의 이유를 알고자 하지, 무작정 야단치지 않았다. 엄마 돈을 몰래 훔쳐 지아에게 비싼 선물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동생 윤은 선이 챙겨야 할 대상이면서도 선을 선답게 만든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의견을 분명히 전달하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지 않게.
여기에 이유가 하나 더 있겠다. 지아는 선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이기에,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싸움이나 다툼은 겉보기에 나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하고나 싸우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잘 지내고 싶고, 관계를 이어가고 싶을 때 싸운다. 대화로, 그게 안 되면 몸으로라도 풀고 싶은 것이다.
반면, 보라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잘 지내려는 마음으로 말은 걸었어도 울분을 토하지 않았다. 보라가 무서웠을까? 만약 그랬다면 울고 있는 보라에게 손수건을 내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못 본 척을 했겠지. 공통된 감정이나 기억이 흐릿한 관계이기에, 딱히 바라는 게 없다.
선의 엄마가 흘리듯이 했던 말이 있다. 1학년 때 보라와 친했다고. 보라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성적에 대한 압박감과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받고자 하는 열망은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강했다. 그 압박감에서 비롯된 불안감도. 불안정한 상태를 질투와 이간질, 시기심이 비집고 들어섰다. 이유가 어떻든 보라가 아주 못된 건 맞다. 하지만 어리숙하다는 사실이 먼저다. 고의 없는 순수함이 때로 가장 날카롭듯 불안한 자아의 감정 표출은 울퉁불퉁하고 삐죽해서, 여린 자신을 보호하고자 타인을 공격했다. 다른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제각기 외로운 아이들은 각자의 길에서 헤맨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도, 진심을 내치고 짓밟았다. 다행인 건 정반대처럼 보이던 지아와 선은 똑 닮았고, 그 동질감과 끌림을 서로 느낀다는 점이다. 집에서 밝고 쾌활한 선은 학교에서 지아의 모습이었고, 반대로 학교에서 조용하고 울적한 선은 집에 홀로 남은 지아였다.
게다가 지아 또한 이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그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자신의 과거 같은 선에게서 도망쳤다. 당연한 반응이다. 심한 트라우마를 대할 때 해서는 안 될 첫 번째, 억지로 그 사건을 들추는 것.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상처를 들여다보는 건 그 일을 제 손으로 반복하는 셈이다.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물어야 변화의 여지가 생긴다.
그 시작은 선의 손톱에서부터다. 색연필, 그리고 자신이 선물한 팔찌와 함께 지아와의 관계가 끊어진 게 아니었다. 약지 손톱의 끄트머리, 함께 물들인 봉숭아 물이 남았다. 지아가 자신의 비밀을 나누어 준 그 밤이. 선은 체육시간에 팀원들의 선택을 받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애써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공격을 피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받아친다. 다른 애들은 안중에도 없다.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지아는 예전의 선처럼 선 밖으로 쫓겨난다. 너 아웃이라고. 거짓말 치지 말고 나가라고. 선은 처음으로, 잘못된 말에 반박한다.
야, 내가 봤는데
한지아 금 안 밟았어.
선의 말은 받아들여졌으나, 지아는 게임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 결국 선 밖에 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쫓고, 피하고, 다시 쫓고, 눈이 마주친다. 선이 지아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영화는 암전 된다. 그들은 무슨 대화를 했을까. 아니, 대화가 필요할까.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들여다보면 웃음부터 날 텐데. 왜 웃냐는 물음과 네가 먼저 웃었다는 대답을 반복하며.
상처를 주고받고, 그 상처를 숨기려 미운 말을 뱉고, 그러는 중에 생채기가 옅어지고. 한 폭의 동화 같은 기억 하나로 우리 둘은 우리들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