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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순간을 기록합니다

다이어리, 기록, 그리고 나 자신

by 호단

한 해의 끝자락, 혹은 새로운 해의 시작인 12월과 1월 사이. 곳곳이 붐비는 거리 못지않게 서점도 북적하다. 정확히는 서점의 한 섹션, 그러니까 다이어리가 진열된 공간이. 새해, 새 마음, 새 인생을 바라며 그 주변을 서성거리던 이들 중 하나가 나였다. 다이어리의 여백을 가득 채울 만한 근사한 내일이 이어지길 바라면서.


매년 다이어리를 사는 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더라. 기억을 되감아보면,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일곱 살 겨울이었다. 핸드폰 가로길이보다 조금 더 길고, 텀블러 세로길이와 엇비슷한 노란색 다이어리. 가장 좋아하는 색이 뒤덮인 이 기록장을 소중히 채워보겠노라고 다짐했다. 다이어리를 쓰는데 다짐씩이나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일곱은 내게 변곡점이었다. 은근한 따돌림을 짧게 겪었던 열다섯의 기억을 바꿀 전환점. 고등학교는 이전과 전혀 다른 나로 재탄생하기 적절한 환경이었다.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이 고작 서너 명 남짓한 데다가 학교에 입학한 친구들도 비슷한 사정이었으니 말이다. 소심하고 조용한 나는 이제 안녕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던 모습을 얻었냐고 물으면 어느 정도는 맞다고 답할 수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 밝고, 쾌활하고, 장난스러운 친구 정도로 보였을 테니까. 그런데 사람 자체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는지 일 년도 못 가 익숙하고도 편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때 썼던 다이어리를 펼쳐 변화를 위한 처절한 기록을 훑어보면, 그 몸부림이 의미가 없진 않다. 내가 나를 속이면 반드시 탈이 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소심하고 예민한 나도 나를 이루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그러니까, 내 성격은 '고쳐야 하는 어떤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였다.

이러한 깨달음이 매일 다이어리에 기록한 덕분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매일이 아니라 순간을 기록했다. 창피함, 속상함, 떨림, 걱정, 기대, 뿌듯함, 절망. 응축된 감정이 글씨체에도 담겼다. 차분하고 반듯한 날이 있는가 하면, 뭐라고 썼는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엉망인 날도 있었다.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많았다. 나쁜 일이 생기면 감정과 생각을 다뤄야 했고, 나에게 가장 좋은 방식은 기록으로 배출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도 큰 도움을 준다. 어쩌면 펜을 빠르게 놀리던 그 당시보다 훨씬 더.

기록의 힘을 새삼 느낀 것은 최근이다. 이 경험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올해의 장마와는 달리 푹푹 찌던 작년 여름을 사건의 시작점으로 찍어본다. 처음으로, 가장 소중한 타인이 생겼다. 관점이나 좋아하는 음식처럼 사소한 것부터 다른 둘이었지만, '성취하고 싶은 목표'라는 커다란 가치가 같았다. 가족에게서 독립하여 제 한 몸 건사할 만큼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기. 하나 더, 우리는 영화를 좋아했다. 재밌는 영화를 소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작게나마 팀을 꾸려 완성도 해보았다. 부족함과 아쉬움이 한가득 담긴 결과물이었어도 끝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여태 해오던 일을 완전히 내팽개치고 영화에 올인했다간 독립의 첫 발을 떼기도 전에 꽁꽁 묶여버릴지도 몰랐다. 우리가 선택한 차선은 유튜브였다. 당장 영화를 제작할 순 없어도 영화와 관련된 영상은 만들 수 있었다. 기본 구성은 이러했다. 먼저 영화를 바라 볼 다섯 가지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의미 있다고 느낀 영화들 중 하나를 골랐다. 다섯 기준과 관련된 영화 내용을 나누고 총점을 산출한 후, 영화 등급을 정해 본다. 비슷한 배우, 비슷한 소재, 비슷한 전개, 한마디로 뻔한 영화에 신물이 난 이들을 위한 콘텐츠였다. 일주일 단위로 회의와 편집, 수정을 반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같은 목적지를 함께 달리는 사람이 있었기에 지치거나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들떴다. 이대로 하면 뭐라도 될 것 같다는 기대감에.

그러나 반년도 되지 않아 채널을 접어야 했다. 독립하기 전까지 그 애는 자신의 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애를 자유롭게 해 줄 만한 힘이 내게는 없다. 이로써 모든 것을 같이 만들어 가던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빼곡한 일정표가 무용지물이 되자,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몰랐다. 주변 친구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구걸했다. 타인의 말은 순간이었다. 열심히 귀 기울여도 기억에 남는 건 몇 없었다. 이쯤에서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적었다. 분노, 절망, 슬픔, 억울함을. 글이라기보다는 화풀이였다. 한 나절을 뱉고 나서는 기록을 새롭게 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그래서 감정이 어떤지, 오늘 뭐했는지, 잠깐이나마 어디에 집중했는지, 어떤 때가 가장 힘든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과거의 흔적을 다시 살폈다.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감정적이었던 나. 지나고 보니 우스운 거다. 그 일이 별 거 아니었다고 말하긴 아직도 어렵지만, 그렇게까지 괴로워할 일은 아니었다. 한 번 잃으면 영원히 되찾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지금 겪고 있는 일 때문에 세상이 끝난 것 같고, 더는 괜찮아질 수 없다고 느껴도, 그것은 순간이다. 순간은 지나간다. 머리를 싸매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와중에도 괴로움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덧붙여, 나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이다. 나 자신. 타인의 말과 행동에 귀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들 이 또한 순간이다. 말했듯이 순간은 지나간다. 그러나 내가 나에게 행한 것은 기록된다. 내 마음에, 내 머리에, 내 손에, 때로는 내 다이어리에. 마지막으로 이 힘든 시기에 읽었던 책, 어드리프트에서 나온 한 구절로 이야기를 마쳐볼까 한다.



반파된 배 하나로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태미. 허리케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을 깊이 다스리기도 전에 살아날 궁리부터 해야 하는 그 막막함. 태미가 삶을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목소리'가 찾아온다.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쓴소리도 하고, 달래주기도 하며. 그 목소리는 태미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위로와 조언이었을 거다. 41일간의 고달픈 여정을 끝낸 태미가 스스로에게 되뇐 말은 이거였다.


나를 구원해줄 사람은 나뿐이었어.


자신이 생겼다. 나에게 닥친 시련도 결국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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