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여름'하면 생각나는 영화 장르가 있는가? 호러나 스릴러가 제일 먼저 나올 것 같다. 그 뒤를 청춘이나 액션물이 이어가겠고. 지난 6월, 코로나 때문에 침체된 분위기에서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4DX 재개봉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그럴 만도 하다. 모래사막을 달리는 액션 시퀀스와 웅장한 음악이 답답한 마음을 한 번에 날린다.
나는 극장에서 한 번도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넷플릭스나 VOD로 네다섯번을 보았다. 앞서 말한 시원한 액션 때문이 아니다. 컷들이 눈에 익을수록 긴장감과 짜릿함이 줄어든다.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은 메시지에서 나온다.
순수하기에 강한 '퓨리오사'가 나오는 이상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광활하고 조용한 모래 위, 사령관 퓨리오사는 전투 트럭을 몬다. 독재자 임모탄이 명한 목적지는 가스 타운. 평소와 똑같이 출발하다가 방향을 동쪽으로 튼다. 퓨리오사를 따르던 워보이 하나가 의아해한다. 이유를 물어도 퓨리오사는 별다른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을까? 아직 모른다. 사령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퓨리오사가 만든 수많은 업적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이유가 있긴 하다. 임모탄은 퓨리오사의 의도를 금방 눈치챈다. 이 곳 시타델을 탈출하기 위해서 무수한 시도를 해온 퓨리오사. 돌발행동이 아니라 반란이다. 임모탄의 군대, 워보이들은 격분한다. 반역자 퓨리오사를 잡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들뜬다. 임모탄에게 충성하면 천국의 땅 발할라로 갈 수 있다. 오늘이 기회다.
전투트럭 뒷좌석 아래, 퓨리오사의 동료들이 숨었다. 허술한 천으로 겨우 몸을 덮은, 비실비실한 다섯 사람들. 임모탄이 자신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해 갈취한 '도구'이다.
이 '물건'들은 임모탄에게서 벗어나자 주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전환된다. 퓨리오사를 공격하는 맥스, 워보이 눅스와 맞서 싸운다. 퓨리오사가 급습할 틈을 만들고, 눅스를 저지하고, 제 목숨을 '도구'처럼 이용한다. 눈동자에 언뜻 두려움이 담겨도 손과 발은 계속 움직인다.
강함의 재정의
전투능력이 출중한 맥스, 무모할 정도로 겁이 없는 눅스보다 '물건' 취급받던 그들이 강했다. 맥스는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순간에 트라우마가 떠올라 무너진다. 괴력을 가졌는데도 상황을 압도하지 못했다. 눅스 또한 물리적 힘은 그들보다 세다. 하지만 발할라를 갈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자 모든 의욕을 잃는다. 누워서 훌쩍이는 눅스를 다섯 여성 중 하나가 일으켜 세운다. 구원 같은 손길. 눅스는 충성스러운 아군이 되었다.
그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강한 사람이 퓨리오사다. 자신의 고향 그린랜드에서는 사람답게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7천 일을 견뎠다. 희망은 불안이나 공포보다 커다란 자극제다. 후자의 감정은 방향을 흐린다. 반면, 전자는 시야를 뚜렷하게 만든다.
퓨리오사 무리는 내내 사막을 달린다. 사막은 어떤 곳인가? 우리가 사는 땅과 달리 정해진 길이 없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그러나 시타델에서 그린랜드까지, 퓨리오사는 도로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아간다. 망설임도, 다급함도 없다. 묵묵히 향할 뿐이다. 희망 빼고 다른 무엇은 섞이지 않았다. 그래서 취약하다. 하나가 사라지면 전부가 사라진다.
그린랜드에 살던 어머니들을 만났지만, 이제 그 땅은 생명이 없다. 유일한 희망이 죽었다. 퓨리오사의 괴로움이 사막을 타고 흐른다. 그것도 잠시, 퓨리오사는 또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번에는 소금 사막이다.
모아둔 연료는 160일 동안 달리면서 소모될 것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있기는 할지, 가면서 무엇을 만날지 아무것도 모른다. 끝 모를 도전. 퓨리오사는 희망 없이 살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를 간과했다. 시타델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맥스가 돌아가자고 제안하자, 다섯 명의 여성이 한 마디씩 얹는다. 비옥한 땅, 풍부한 물, 넘치는 인력. 임모탄이 독점하지 않은 시타델은 그들이 꿈꾸는 그린랜드와 똑같다.
그들은 그렇게, 달려온 방향 그대로 돌아간다.
그들의 집, 새로운 고향, 시타델로.
지금, 당신을 묻다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다시 보고 의미 하나를 덧붙여 본다. 2020년 1월 경부터 해가 끝나가는 10월까지,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싸움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10개월 동안 우리는 자유가 묶이고, 계획이 틀어지고, 하고자 했던 일을 포기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로 심한 우울감을 겪는다. 이 마음을 달래고자 막연한 희망을 품는다. 언젠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언제인지 몰라도 언젠가는.
백신이든 뭐든 개발되어서 코로나가 사라지면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시간은 역행할 수 없다. 그러니까, 코로나 시대가 없었던 과거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그 때문에 괴로워하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막연한 희망을 좇아 미래로 도망치지 말자는 의미다. 근거 없는 긍정은 독이나 다름없다.
영화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임모탄이 사라진 시타델은 평화로울까? 임모탄의 독재로 시타델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굶주렸다. 의심과 분노, 상처 따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것이다. 임모탄이 있을 때보다 어지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타델에서 그린랜드로 향하며 퓨리오사 무리는 바뀌었다. 정체모를 미래의 어딘가 대신 제 손으로 직접 시타델을 택했다. 헤쳐나가기 어려울 테지만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시대에 휩쓸려 사는 사람과 시대를 선택한 사람은 다르다. 전자는 제약에 초점을 맞춘다. 이전과 달리 할 수 없게 된 일을 되새긴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감정에 빠진다. 후자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 내가 속한 시대, 이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을 찾아 나선다.
코로나 시대 10개월 차,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왔던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가? 미래는 현재의 결과다. 지금 쌓아가는 길이 저마다 다른 결과를 만들 것이다.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액션
러닝타임
120분
감독
조지 밀러
출연
샤를리즈 테론(퓨리오사 役), 톰 하디(맥스 役), 로지 헌팅턴 화이틀리(스플렌디드 役), 니콜라스 홀트(눅스 役)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