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단 Oct 19. 2020

태어난 의미는 없다

영화 <올드 가드>

지독히 오래 사는 사람들

사회적 지위나 계급, 문화권과 상관없이 불로불사는 인간의 오랜 염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나이가 들수록 자주 나눌 '덕담'이다. 우리는 왜 계속 살고 싶어 할까?


모든 생물체는 세상에 내던져진 후 지속적으로 생을 영위해 간다. 그러다 어느 날 생의 끝을 맞이한다. 죽음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존재는 죽음의 정체를 모른다. 이런저런 주장은 넘친다. 하지만 근거를 판별할 기준조차 없다.


전부는 아니라도 죽음의 원인을 어느 정도 안다. 몸의 변화, 노화, 병균, 자상, 바이러스, 사고, 불, 물, 자연재해 등. 문제는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스레 공포를 느낀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기 전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을 꼽아본다. 원인의 일부를 아는 덕분에 어느 정도는 예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죽음의 원인이 아예 없다면, 두렵지 않을까? 예를 들어, 칼에 찔리든 총을 맞든 독가스를 마시든 죽지 않는 삶이라면 말이다.



영화 <올드 가드>는 인간의 오랜 염원에 닿은 소규모 부대를 보여준다. 겨우 네 명으로 이루어진 이 부대는 몇 십만, 혹은 몇 백만 군대 못지않은 위력이 있다. 그들이 불사의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도 몰랐다. 죽음에 당도해서야 불멸을 깨닫는다. 창에 깊숙이 찔리는 등 죽음이 당연한 상황에서 오히려 상처가 말끔하게 낫는다.


부대의 리더이자 첫 번째 불멸자는 앤디였다. 무려 고대 그리스 전사였던 앤디가 중세에 니키와 조를 만나고, 19세기 무렵 부커가 합류했다.


탄생 시기도 사는 곳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봤을까? 꿈 때문이다. 새로운 불멸자가 탄생할 때 그들은 서로의 꿈을 꾼다. 앤디를 비롯한 세 명의 불멸자는 200년 만에 꿈을 꾼다. 군복, 눈, 남자, 동맥을 자르는 칼, 군번줄.


새로운 불멸자, 나일. 과다출혈로 죽었던 나일은 상처 하나 없이 깨어났다. 단순히 잠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다. 부활에 가깝다.


나일은 질문이 많았다. 왜 하필 자신인지, 언제 죽을 수 있는지, 영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오래 산 앤디도 답을 몰랐다. 혼란스러워하던 나일은 앤디를 따라 밖으로 나선다. 두 사람이 대화하던 와중, 집안에서 굉음이 들린다. 습격이다. 니키와 조는 이미 실험체로 끌려갔다. 앤디가 뒤처리를 할 동안 부커는 익숙한 듯 최소의 짐을 꾸린다. 나일은 태평한 부커를 이해할 수 없다.


답은 곧 눈으로 마주한다. 앤디 혼자서 상대 부대를 전멸시켰다. 나일은 환멸과 공포를 느낀다. 자신이 평범한 해군이었을 땐 민간인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살인했다. 이유가 있어도 살인은 살인이었다. 하지만 어지러운 머리를 달래는 방법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곳은 더하다. 이유조차 모른다. 나일은 그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로 한다.


혼자 다른 길을 가던 나일. 하지만 앤디에게 문제가 생기자 곧장 앤디에게 돌아간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앤디의 핏자국. 앤디는 이제 불멸자가 아니다. 언제든 평범하게 죽는다.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그리고 한 벽면을 뒤덮는 어마어마한 삶의 기록을 마주한다. 앤디 부대가 전쟁터에서 한 사람을 살린다. 그렇게 살아난 누군가가 새로운 의학기술을 발명하고, 죽을 뻔한 이들을 구하고, 핵전쟁을 막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인류를 지켜온 가드였다.



문명의 탄생 전부터 살아온 앤디는 죽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불멸은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아주 오래전, 불멸자였던 동료의 피가 멎지 않았듯이. 그때 앤디는 자신의 미래도 보았다. 죽음은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끝이 있다는 사실은 무섭다. 작게나마 원인을 예측할 수 있는 우리도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앤디는 도망가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각자 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사는 방식을 정한다는 것은 삶에 특정한 의미와 목표를 부여한다는 말이다. 앤디가 선택한 의미는 '보통의 인간'이었다. 쉽게 다치고 죽는, 불멸자들에 비해 훨씬 약한 인간. 그 약한 존재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꾼다.


나일도 앤디의 뜻을, 그리고 이 부대의 의미를 깨닫는다. 실험실에 묶였던 네 사람을 구출하고, 다섯 명은 처음으로 합을 맞춘다. 그들을 위협한 무리를 제거하며 사건은 일단락된다.



어디선가 이런 댓글을 보았다. '삶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맞다. 삶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그저 태어났을 뿐이다. 각자가 삶의 의미를 찾고 만들어야 한다.


거대한 인생을 꿰뚫는 본질 찾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하이데거가 '인간은 죽음을 향하는 존재'라고 명명했듯이, 앤디가 '우리도 언젠가 죽는다'라고 받아들였듯이 죽음부터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불안과 두려움은 막연하기 때문에 생긴다. 감정을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커다란 갈래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움 때문에 무언가를 놓치진 않았나?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액션


원작

코믹북 Old Guard


러닝타임

145분


감독

지나 프린스-바이스 우드


출연

샤를리즈 테론(앤디 役), 키키 레인(나일 役), 마티아스 스후나르츠(부커 役), 응오타인번(꾸인 役), 루카 마리넬리(니키 役), 마르반 켄자리(조 役) 등

이전 01화 때로 거리를 두어야 보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