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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단 Feb 28. 2019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기

넷플릭스 드라마 <러시아 인형처럼>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초기, 수많은 시청자를 넷플릭스 세계에 데려온 자체 제작 드라마 <Orange is the New Black(일명 '오뉴블')>. 여성 교도소를 배경으로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체형, 인종, 성격, 배경을 가진 여성들 간의 관계와 사건을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오뉴블과 <러시아 인형처럼>이 무슨 연관인지 의아할 것이다. 간단하다. 오뉴블에서 니키가 <러시아 인형처럼>의 주인공으로 나왔고, 한창 오뉴블에 빠져있던 나는 종영의 여운을 해소하기 위해 드라마를 틀었다.


시청 계기만큼이나 줄거리도 단순하다.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이 <위기 탈출 넘버원>에 나올 만큼 허무한 원인으로 죽고, 깨어나고, 죽고, 또 깨어난다. 어디서? 생일 파티하던 건물 화장실에서. 죽음을 반복하던 주인공은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체 스토리를 관통하는 키워드: 시간, 그리고 책임. 이를 중점적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나디아는 왜 죽음을 반복할까?

주인공 나디아는 시간에 갇혔다. 처음엔 인지조차 못한다. 아까 굴러 떨어진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는다거나 아까 만났던 사람을 무시하는 식으로 죽음을 피해 다닌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디아는 허무맹랑하게 죽는다. 죽고 살아나기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사실을 받아들인다. 오늘 생일에 묶였고, 어떤 원인을 해소하지 않는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음을. 또다시 화장실에서 살아난 나디아. 이번엔 전과 다르게 행동한다. 자신의 주변을 살펴본다. 파티가 열린 건물의 유래를 알아보고, 친구가 건네 준 대마초의 제조자를 찾으러 다닌다.


나디아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조사 방향이 점점 과거를 향했다. 과거의 과거의 과거로 가면서 사건의 시작점, 즉 본질을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또한 되감아봐야 한다. 나디아는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무서웠던 것이다. 깊이 박아둔 기억은 꺼내기가 어렵다.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먼지가 묵직하게 쌓인다. 제 손이 더러워질 게 뻔해서 닦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볼 때마다 죽음을 맞이한다. 눈을 뜨면 생일 파티가 열렸던 건물의 화장실. 처음으로 돌아갔다. 시작점에 온 것 같지만 소용없다. 문제의 본질은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매듭을 풀어준 첫 번째 인물, 루스. 나디아는 상담사 루스에게 꾹꾹 누르고 있던 죄책감을 고백한다. 나디아의 어머니는 나디아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어린 나디아에게 선택지가 생겼다. 1) 엄마와 같이 살거나 2) 루스와 같이 사는 것. 어머니는 나디아에게 말했다. 엄마를 선택하라고. 나디아는 어머니의 말을 따르긴 했지만, 결국 자신의 버팀목이 되었던 루스를 택한다. 그리고 1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디아는 자신의 선택이 기폭제가 되어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루스는 답한다. 나디아 너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살고 싶어 했다고. 되려 루스가 그런 나디아를 그냥 놔둘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물음을 던진다. 그렇게 살고 싶어 했었는데 지금도 같은 마음인지.


어린 시절의 나디아는 장난스럽고 유쾌한 지금과 달리 정적이었다. 메마른 눈, 의욕이 없어 보였다. 루스는 나디아가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다고 회상한다.  루스가 잘못 판단한 것일까? 열망은 꼭 적극적이고 뚜렷한 의사표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멍하게 눈동자를 든 채 꾸역꾸역 순간을 버텨내고 있는 모습도, 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은 나디아의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는 어른보다 상황을 극적으로 느낀다. 넘어졌을 때 조용하다가 어른이 당황하는 순간 큰소리로 우는 것과 비슷하다. 어른이 흔들리면, 아이는 더더욱 흔들린다. 감정 기복이 심한 엄마에게 어린 나디아가 기민하게 반응하면 무너져 내리기 십상이다. 나이다는 제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가장 가까이에서 나디아를 지켜본 루스가 충분히 느꼈을 거다.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을 텐데도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나디아가 얼마나 생으로 펄떡이는지.



못난 나를 마주보기

나디아의 의지를 보자 하니 나를 반추하게 된다. '오늘은 정말 나가서 계획한 일을 해야지'. 기껏 다짐해 놓고 하지 못한 나, 마감기한이 코앞에 닥쳐서야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곤 했던 나를 말이다. 결국 할 거면서 왜 못했지. 왜 미뤘지. 레퍼토리의 끝은 늘 후회와 자책이었다. 그런데 뭔가를 하려는 시도-설령 실행까지 닿진 못하더라도- 자체가 삶을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노력 아닐까. 미친 듯이 하는 것만 노력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남들 눈엔 별 거 아니라도 상관없다.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을 부단히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인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다음이 있다는 의미다. 오늘은 마감기한이 되어서야 움직였지만, 다음엔 하루 더 빨리 움직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과 똑같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 게 아니다. 나를 살펴볼 단서가 되니까. 왜 이걸 어려워하고, 왜 이걸 하기 싫어하고, 왜 이걸 하고 싶어 하는지. 꽤나 낙천적인 생각이지만 살아간다는 게 그렇다. 이러나저러나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남의 시선, 남의 눈치를 보고 살다가 갑자기 시선을 나에게 돌린다? 생각만으로 부담스럽고 어렵다. 그래서 자꾸 버릇처럼 남과 비교하며 채찍질만 했다. 왜 못해, 남들 다 하는데 난 왜 이러고 있어. 여태껏 구박만 했으니 이제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괜찮아. 나는 나의 속도가 있고, 나의 길이 있어.



그리고 받아들이기

시간에 묶인 나디아를 풀어준 두 번째 인물, 루시. 나디아는 루시와의 만남을 꺼려했다.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루시가 있는 카페 근처를 찾아간다. 창 너머로 루시와 눈이 마주친 나디아. 루시는 인사처럼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나디아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뒤돈다.


루시를 보면 어린 나디아가 생각난다. 당시 나디아보다 맹랑한 눈빛과 분명한 의사표현을 가졌지만, 똑같이 살고자 하는 아이다. 나디아는 루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에 루시를 만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나디아에게 생명력을 준 책을 선물로 준다. 루시는 그 생명력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디아는 피를 철철 흘려가며 죽어 간다. 하지만 이번 죽음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랫동안 나디아의 몸속에 갇혔던 파편을 뱉어내는 과정이었다. 나디아는 드디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받아들였다. 과거의 죽음과 미래의 시작. 이제 남은 건 하나다. 살아가는 것. 다음을 만들어 가는 것.


이럴 때야말로 사람이 전보다 성장하는 게 아닐까. 애써 피하기만 했던 문제나 상황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할 때. 짓눌렸던 감정과 생각도 풀리면서 발돋움하는 것이다. 루스의 표현을 조금 가져다 쓰자면, 어둠 속에서 어떻게든 고개를 내미려던 새싹이 줄기를 뻗고 잎을 키우며 열매를 맺는 벅찬 순간.



Gotta get up, Gotta get out



나디아가 화장실에서 다시 눈 뜰 때마다 들려오던 노랫말. 반복되는 죽음이 주는 첫 번째 메시지. 일어나서, 나가서, 마주해야지. 러시아 인형처럼 겹겹이 숨겨진 나를.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코미디


감독

너태샤 리온, 레슬리 헤들랜드, 에이미 폴러


출연

너태샤 리온(나디아 役), 엘리자베스 애슐리(루스 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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