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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Feb 03. 2022

예민 모스키토

예민 점주 이야기


부산 태종대에 놀러 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그리며 언덕을 올랐다. 바다가 아직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비릿한 바다내음과 통통배 엔진 소리가 들렸다.

“배가 지나가나 보네.”

“배? 어디?”

“기름 냄새랑 엔진 소리 들리잖아.”

“냄새? 소리?”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 담배 냄새! 누가 담배 피우나 봐.”

“담배? 아냐. 여기 금연 구역인데 누가 담배를 피겠어.”

“아냐, 담배 냄새야.”

낮은 언덕을 넘어 5분쯤 걸어내려갔다. 커다란 바위 뒤에서 남자 둘이 어색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 발 밑으로 반쯤 타다 남은 담배 두 대가 꺼져가는 숨을 몰아쉬며 뒹굴고 있었다.

“대단하다. 저 냄새를 어떻게 맡지?”

남편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핀 남자들보다 나의 후각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시 5분 정도를 걸어내려가니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저 멀리 통통배 하나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물을 걷어올리고 있었다.

남편은 엄지 손가락을 세워 올렸다.




모스키토 음이란 것이 있다. 어릴 적에는 들리다가 20대 후반부터 많은 사람들이 듣지 못한다는 소리, 모스키토 음. 모기 소리처럼 가늘고 높은 주파수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안 들리게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람들은 못 들었다는데 나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머리가 아플 때가 많다. 이명과는 다르다. 이명은 내 귀에서 울리는 소리고 모스키토 음은 분명 밖에 존재하는 소리다.


여기서 잠시 내가 모기 잡는 법을 소개할까 한다.

우리 집에서는 모기향을 쓰지 않는다. 액체 모기향도 마찬가지다. 모기향을 켜고 잤다가 다음날 온몸이 퉁퉁 부었다. 물론 나만. 다른 식구들은 멀쩡했다.

“모기 죽이려다가 내가 죽겠다.”

모기향을 서랍장에 처박았다. 이제 모기향은 마당에서나 손님 올 때만 쓴다.


다음에 선택한 방법은 모기장이었다. 이번엔 밤새 모기장에 매달려 밥 좀 달라고 울부짖는 모기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합동 작전을 폈다. 한 사람은 모기장 밖에서 한 사람은 안에서 모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손바닥을 마주친다. 짝짝, 잘 맞아야 한다. 안 그러면 손바닥과 손목만 아프고 모기 잡다가 밤을 새야 한다. 모기장을 펴고 접고도 힘들었다. 밤에 화장실이라도 한 번 가려면 모기장은 천근만근이 되었다. 숨 죽이며 모기장에 매달려 있다가 틈을 노린 모기의 침입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다음에 찾은 방법이 검문검색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방마다 모기를 잡으러 들어간다. 불을 끄고 숨소리를 죽이고 모기 소리를 듣는다.

“에에~엥~”

모기가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위치가 확실해지면 불을 켠다. 10 마리 중 7 마리는 갑자기 켜진 전등불에 놀라서 주변의 벽에 들러붙는다. 천장이면 좀 귀찮지만 위치가 확실하니 파리채를 휘두른다. 허공에서 윙윙 돌고 있는 나머지 세 마리는 손으로 처치한다. 다음엔 애들 방으로 향한다. 애들이 놀고 있으면 전등 조절이 자유롭지만 공부를 하고 있다면 불을 끌 수 없다. 대신 눈을 감는다. 오른쪽 왼쪽, 위치를 파악한 후 눈을 번쩍 뜨고 홱 고개를 틀어 손으로 모기를 잡는다. 가끔 아이들 등에 앉아 있는 모기를 내리쳤다가 아이들을 울리기도 했다. 요즘엔 경고를 한다.

“네 어깨에 모기 있다. 힘줘.”

아이가 등에 힘을 잔뜩 주면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잡으면 아이도 불만이 없다.

“어, 못 잡았네.”하면 원성이 쏟아진다. 낮에 잘못한 걸 가지고 끝내 화풀이하는 속 좁은 엄마가 야 한다.

티셔츠에 피가 묻었을 때는 취침 시간이 늦어진다. 누구 피인지 근원을 찾아 약을 발라줘야 하고 티셔츠를 물들이는 붉은 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래도 남는 녀석들이 있다. 푹 잠에 들었는데 ‘에엥’ 거린다. 그럴 때 쓰는 방법은 이불을 덮고 귀만 내놓는 것이다. 모기는 유일한 식량원인 귀로 다가온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지면 조심스럽게 팔을 이불 밖으로 꺼낸다. 사정거리에 모기가 들어오면 잽싸게 내리친다. 잠결에 너무 세게 내려쳐서 귀가 아플 때도 많지만 그대로 다시 잠을 잘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베개 근처에 곱게 누워있는 모기를 만날 수 있다.


지난여름이었다. 잠결에도 맹렬히 다가오는 모기 소리가 들렸다.

“에앵앵”

힘이 좋은 녀석이다. 소리 한 번 크다.

'저 녀석 못 잡으면 오늘 잠은 다 잤다.’

굶주린 적군의 소리에 결전을 준비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때다.' 팍! 내리쳤다. 아차, 엇나갔다. 한 대 맞은 귀가 눈 없는 손바닥을 원망하고 있었는데…. 모기 소리도 심상치 않다.

“이~ 이잉~”

잠결에 입 삐뚤어지고 다리 부상을 입은 모기가 그려졌다.

“잉~이이잉, 이이잉….

모기 소리가 멀어져 갔다.

아직도 귀는 얼얼했지만 적군은 완벽히 후퇴했다. 이번 생에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승리에 취해 오랜만에 단잠에 빠졌다.


모스키토 음을 들으면 어떤가? 좀 많이 예민하면 어떤가?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소리라도 가슴에 담아둬야 할 소리와 버려야 할 모기 같은 소리 정도 구분하면서 살면 되지.


한 여름 모기 같은 인생 재밌게 살다가고 싶어서, 예민해서 힘드신 분들 잠시 쉬어가시라고, 헛소리 좀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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