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른의 고비에 들어서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잘 그려낸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웃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쓰렸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사람들의 마음이 벼랑이 되어 서로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회는 더 각박해진 것 같았고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할 내 아이들이 안쓰러워졌다. 그러면서도 잘 살아내겠구나 믿음이 생기는 것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우리 엄마 술집 했어.”
주인공 셋 중에 제일 술이 센 한지연이 하는 말이다. 다른 주인공 강지구의 아버지는 깡패였다가 목사님이 되었고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자식들에게서 보상받고 싶어서 아등바등 자식들을 볶는다. 예능작가 한소희의 부모는 각설이다.
나의 ‘꼰대’적인 생각으로는 ‘이제 이 여자들의 과거가 나오겠구나. 부모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고 자신들이 이러고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부모들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냥 '저 어디 살아요'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정보로 그친다.
삶이란 게 서로 엉켜 있어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겠지만 부모님 일에 연연하는 모습들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연애하고 돈 벌고 술 마시기도 바쁘다. 부모는 부모일 뿐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일까? 지연이가 자기 엄마 술집을 했다는 소리를 당당히 하는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과연 요즘 젊은이들은 '니그 아버지 뭐 하시냐'는 소리에 자유로워진 것일까? 옛날에는 없었던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가 생긴 지금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더 아프고 힘든 이야기라 계속 떠드는 것일까?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라는 소리가 SNS에 크게 회자되었던 일이 생각났다. 참, 그놈의 아버지, 어떤 사람이길래 세상을 시끄럽게 하나, 잠시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물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넌 어떤 사람인데?"
"니그 아버지 뭐 하시냐?" 한 배우가 우스개 소리로 떠들며 다니던 프로가 있었다. 연예인 왔다고 좋아서 뛰어오던 동네 아이들이 겸연쩍게 웃으며 돌아섰다.
우스개 소리로 끝나야 하는 말인데 깊이 박혀버려서 말문을 막아버리곤 한다. 나는 그 말을 당연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온 세대였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겠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 왜 묻는 걸까? 왜 자꾸 부모를 등에 얹으려고 드는 걸까?
부모가 무엇을 하는가를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은 아직 제 발로 서지 못한 어린 아이일 뿐이다. 자기가 크지 못했다고 다른 사람의 발까지 걸어 넘어뜨리려는 것이다.
결혼 초에 들었던 말 같지 않은 말이 있다.
"남자가 성공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부모를 잘 만나던가, 와이프를 잘 만나던가, 자식을 잘 키우던가."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도 그 말을 떠들고 다니는 남자의 일그러진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인성을 지녔길래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까? 상대할 사람이 못 되는 것 같았다. 사람이긴 한 걸까? 귀를 씻고 싶었다.
드라마를 보니 나에게 꼰대라는 소리를 했던 후배들 나잇대의 사람들이 꼰대 소리를 듣고 있었다.
"흐흐, 너희도 늙는구나."
세월이 공평해서 좋기도 한데 자기 듣기 싫은 소리 한다고 무조건 꼰대라고 폄하하는 것도 문제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은 꼰대 소리를 듣고 입을 닥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심 어린 조언과 염려를 꼰대라는 소리로 막아버리는 것은 '니그 아버지 뭐하시냐'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이것도 괜한 잔소리다. 그 정도의 분별력은 제 발로 서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할 텐데. 나야말로 꼰대 짓을 할 뻔했다.
다만 바란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소리 들리지 않고 '니그 아버지 뭐 하시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기를.
나부터 내 발로 제대로 서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응원해야겠다. 부모님의 시간도 그리고 자식들의 시간도 그들에게 온전히 맡겨야겠다.